스승의 발밑에 엎드려
(At the Feet of the Master)
알 시 온
(크리슈나무르티)
앞머리에
신체는 분명히 어리지만, 영혼은 어리지 않은 어린 형제가 최초로 쓴 이 소책자의 서문을 쓸 수 있는 특권을 본인이 선배의 한사람으로써 부여받았다. 여기에 담긴 가르침은 스승께서 “알시온”의 비전(秘傳)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에게 내린 가르침이며, ‘알시온’은 기억을 더듬어서 그 가르침을 기록하였다. 그 기록은 느리고 힘든 일이었다. 왜냐하면 지난 어린 시절 그의 영어는 지금에 비해서 매우 서툴렀기 때문이다. 이 책자의 많은 부분은 스승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재생한 것이며, 그렇지 않은 부분은 스승의 생각을 제자의 말로 부연한 것이다. 스승께서 두 문장을 보충하셨고, 다른 두 부분에는 생략되었던 말이 첨가되었다. 이 밖에 것은 전적으로 ‘알시온’ 자신의 것이며, 그가 세상에 준 최초의 선물이다.
스승께서 말씀하신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소책자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바로 그것이 그가 이 책에서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르침에 따라 그가 살아왔듯이, 그 말씀을 실천해야만 수확이 많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가르침은 스승께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만약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다면, 독자들에게도 필자처럼 ‘위대한 문’이 활짝 열릴 것이고 그가 걸은 도(道)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애니 비산트
1910년 12월
환영에서 진실로 나를 인도하소서.
암흑에서 광명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죽음에서 불멸로 나를 인도하소서.
서 언(序 言)
이 책에 있는 말들은 나의 말이 아니라, 나를 가르치신 스승의 말씀이다. 그 분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무 것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의 도움으로 나는 ‘도(道)’의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여러분도 같은 길로 들어서길 바라므로, 만일 여러분이 거기에 순종한다면, 스승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말씀이 진실 되고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공하고자 하는 자는 그 말씀대로 실천해야 한다. 음식을 보고 맛이 좋을 것 같다고 말로만 해서는 굶주린 자의 허기를 채울 수는 없다. 배고픈 자는 손을 뻗어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스승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할 수가 없다.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여 요점(要點)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어떤 말씀 한마디라도 빠뜨린다면 가르침은 영원히 상실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스승께서는 다시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길에는 네 가지 자질이 필요하다.
분별력
무욕
선행
사랑
이 네 가지 자질에 대하여 스승께서 하신 말씀을 나는 여러분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Ⅰ. 분별력
이들 자질 중 최초의 것은 분별력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개 ‘실재’와 ‘비실재’에 대한 분별력을 말하며, 이러한 분별력은 사람을 ‘도(道)’의 길로 인도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분별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도의 처음 단계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단계에서 그리고 목표에 이를 때까지 매일 매일 연마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길에 들어섰다. 왜냐하면 도에서만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무지한 자는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기껏해야 한 번의 생에 한한 것이고, 따라서 실재적인 것이 아니다. 부와 권력보다 훨씬 더 영속적인 것들이 있다. 여러분들이 일단 그것을 알게 되면, 여러분들은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다: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어떤 종교를 믿든지, 어떤 인종에 속해 있든지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신이 인간을 위해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신은 계획을 가지고 있고, 그 계획은 바로 진화이다. 일단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고, 그것과 하나가 되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계획은 너무나 영광스럽고 아름답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알게 되면, 신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으며, 선을 위해 노력하고, 악에 저항하며, 진화를 위해 일하고, 자기본위의 이기적인 일은 하지 않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신의 편에 서게 되면, 그가 힌두교도이든, 불교도이든, 회교도이든, 기독교도이든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가 인도인이든, 영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러시아인이든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신의 편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서, 그것을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무지한 사람들은 아직도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때때로 우매한 짓을 하고, 자신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즐겁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되는 방법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다 하나이며, “유일자”가 원하는 것만이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실재적인 것을 외면하고, 비실재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들이 이 두 가지를 식별할 때까지, 그들은 신의 편에 서지 못한다. 그래서 분별력을 갖는 것이 제 1단계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선택을 했다 할지라도, ‘실재적인 것’과 ‘비실재적인 것’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바른 것과 그른 것,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유용한 것과 무용한 것, 진실한 것과 거짓된 것, 이기적인 것과 비이기적인 것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바른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스승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바른 것을 선택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체와 인간은 둘이며, 인간의 의지는 항상 육체가 원하는 것과 같지 않다. 육체가 어떤 것을 원할 때, 멈춰 서서 그대가 진실로 그것을 원하는지 생각하라. 왜냐하면 여러분은 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신이 의도하는 것만을 바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을 깊이 파고 들어가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목소리인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육체가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육체도, 아스트랄체도, 멘탈체도 모두가 자기 자신이 아니다. 이들 각 체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모두 자기 자신인 척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들 모두를 알아야 하고, 여러분 자신이 그 여러 체들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해야할 일이 있을 때, 육체는 쉬고 싶어하고, 산책하러 나가고 싶어하며, 먹고 마시고 싶어 한다. 그리고 무지한 자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런 일들을 하고 싶으며, 나는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아는 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을 원하는 것은 내가 아니며, 그것들은 좀더 기다려야 한다.” 때때로 누군가를 도울 기회가 있을 때, 육체는 이렇게 느낀다: “내가 한다면 많은 성가신 일들이 있을 거야.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도록 내버려두자.” 그러나 진짜 자기 자신은 육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내가 선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육체는 여러분 자신의 가축이다. 즉 여러분이 타고 있는 말(馬)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육체를 잘 다루고 보살펴야 한다. 그 육체를 과로시키면 안되고, 깨끗한 음식과 음료만을 먹여야 하며, 언제나 청결히 해서 아주 작은 티끌 하나도 있게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완전히 청결하고 건강한 육체 없이는 힘든 준비 작업을 할 수 없으며, 부단히 계속되는 긴장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육체를 통제하는 것은 언제나 여러분 자신이지, 육체가 여러분을 통제해서는 안된다.
아스트랄체도 자기 나름대로의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도 수십 가지이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성내길 원하고 모진 말을 하길 원하며, 질투를 느끼길 원하고, 금전에 탐욕을 내길 바라며,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부러워하길 원하고, 여러분을 우울하게 만들길 원한다. 아스트랄체는 이런 모든 것을 원하며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바라는 데, 그것은 여러분을 해(害)하고자 함이 아니라 격렬한 진동을 원하고, 그 진동을 계속 변화시키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런 모든 것을 바라지 않으므로, 여러분은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여러분의 체(體)가 원하는 것을 식별해야 한다.
여러분의 멘탈체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타인을 우습게 업신여기길 원한다. 비록 세속적인 일로부터 생각을 돌렸을 지라도, 멘탈체는 자신을 위하여 계산하고, 스승의 일이나 다른 사람들 일을 돕는 대신 여러분 자신의 진보를 생각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여러분이 명상할 때, 멘탈체는 여러분 자신이 원하는 한 가지 일 대신에 멘탈체가 원하는 많은 다른 일들을 생각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여러분 자신은 이러한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이용해야할 여러분들의 소유물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분별력이 필요하다. 만일 여러분이 끊임없이 주의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될 것이다.
오컬티즘에서는 정의(正義)와 불의(不義) 사이에 타협하지 않는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또한 무지한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개의치 말고, 바르면 해야하고 그르면 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은 대자연의 숨겨진 법칙들을 연구해서 그것들을 알고 나면, 언제나 이성과 상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그 법칙에 따라 정돈해야 한다.
여러분은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바른 것과 그른 것이 관련된 일에서는 바위처럼 굳세어야 하고, 중요치 않은 다른 일에서는 언제나 타인에게 양보하고 따라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언제나 점잖고 친절해야 하며, 사려가 깊고 남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그대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자유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해야할 가치가 있는지 알도록 항상 노력하라. 그리고 사물의 크기에 따라 그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세상에서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아주 큰 것보다, 스승이 하시는 일에 직접적으로 유용한 작은 것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 여러분은 유용한 것과 무용한 것을 분별해야 할뿐만 아니라 더 유용한 것과 덜 유용한 것도 분별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먹이는 것은 훌륭하고 고상하며 유익한 일이지만, 그들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일은 그들의 육체를 살찌게 하는 것보다 더욱더 고귀하고 유익한 일이다. 부유한 사람은 누구나 육체를 부양할 수 있으나, 영혼을 살찌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만일 여러분이 안다면, 모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알도록 돕는 것이 여러분의 의무이다.
여러분이 아무리 현명하다 할지라도, 도(道)에서는 배울 것이 훨씬 많다. 배울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서도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 배울 가치가 있는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물론 모든 지식이 다 유익하며, 언젠가는 모든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부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가장 유익한 부분인지 아닌지 유의해야 한다. 신은 지혜이며 사랑이다. 그리고 더 많은 지혜를 가지면 가질수록, 신에 대하여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배워라. 그러나 우선 다른 사람을 돕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부터 배워라. 끈기 있게 공부해라. 사람들이 여러분을 현명하다고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지 말며, 현명하다는 행복감을 갖기 위해서 공부하지 마라. 왜냐하면 오직 지혜 있는 사람만이 현명하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도움을 주고 싶더라도, 무지하면 선(善)보다 해(害)를 더 많이 줄 수 있다.
여러분은 진실과 허위를 분별해야 한다. 생각과 언행을 항상 진실 되게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선 생각을 진실 되게 하라. 그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진실하지 않은 사상이 많고, 우매한 미신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은 진보를 이룰 수 없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서 혹은 수 세기 동안 믿어 온 것이기 때문에 또는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책에 쓰여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집하지 마라. 여러분 자신이 그 일을 생각하고, 그것이 합리적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비록 천명의 사람이 어떤 문제에 합의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그 주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들의 의견은 아무 가치가 없다. 도(道)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미신은 세상에서 가장 큰 악들 중에 하나이며, 여러분 자신을 해방시켜야 할 구속 중에 하나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진실해야 한다. 여러분이 그들의 일에 대해서 모르면, 생각하지 마라. 그들이 언제나 여러분을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해롭게 하는 일을 하거나, 여러분에게 해당된다고 생각되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곧바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지 마라: “그는 나를 해(害)하려고 했다.” 십중팔구 그 사람은 여러분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혼은 그 나름대로의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생각은 주로 자기 주변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화내며 말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해서 해하려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어쩌면 다른 사람이나 어떤 일이 그를 화나게 만들었고, 그때 우연히 여러분을 만났기 때문에 그 화가 여러분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는 어리석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분노는 바보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사람을 진실하지 않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여러분이 스승의 제자가 되면, 여러분은 자신의 생각을 스승의 생각에 견주어 봄으로써 항상 자신의 생각의 진실성을 시험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자는 스승과 하나이며, 자기의 생각과 스승의 생각이 일치하는지 맞추어 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일치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생각이 틀린 생각이기 때문에 스승의 생각으로 바로 바꾸어야 한다. 왜냐하면 스승의 생각은 완전하며, 스승은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승께서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이와 같이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면 그들 자신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런 상황에서 스승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떠한 행동을 하실까?” 왜냐하면 여러분이 행하거나 말하거나 생각할 때마다 스승께서 행하시거나 말씀하시거나 생각하시는 것을 상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말할 때에도 정확하고 과장 없이 진실하게 해야 한다. 절대로 어떤 동기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단지 스승만이 그의 생각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할지라도,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는 안된다. 그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고, 비록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더 친절한 것이다. 틀린 말을 하지 않도록, 말하기 전에 잘 생각하라.
행동에도 진실 하라.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외에 결코 다른 사람인 것처럼 하지 마라. 왜냐하면 마치 태양빛이 맑은 유리를 통해서 반짝이듯이, 진실이라는 순수한 빛은 여러분을 통해서 빛나기 때문이다. 모든 가식은 진실의 순수한 빛을 가리는 장애물이다.
여러분은 이기적인 것과 비이기적인 것을 분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기심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으며, 한 가지 형태의 이기심을 말살하였다고 생각할 때, 이기심은 다른 형태로 더욱더 강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로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생각으로 충만될 것이기 때문에 사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과 여유가 없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또한 다른 방면에서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표면상으로는 아무리 악하게 보일지라도,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들 속에 내재하고 있는 ‘신(神)’을 알아 볼 수 있도록 배워라. 여러분은 여러분 형제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그것을 통해서 도울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신성한 생명”이다. 그 속에 있는 “신성한 생명”을 일깨우는 방법을 배우고, 그 속에 있는 신의 생명에게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라. 그리하면 여러분의 형제들을 과오로부터 구하게 될 것이다.
Ⅱ. 무욕(無慾)
‘무욕’이라는 자질을 갖추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욕망이 그들의 진짜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 자신의 특유한 욕망이나 기호를 없애 버린다면, 그들 자신은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아직 스승을 만나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스승의 거룩한 존재의 빛을 받으면, 스승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욕망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욕망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여러분은 스승을 직접 대면하는 행복을 갖기 전이라도, 만약 무욕이라는 자질을 가지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 앞에 분별력에서 말한 바 있듯이, 여러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고 있는 부나 권력 등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절실하게 느낄 때, 모든 욕망은 사라진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모두 단순하다. 여러분은 그것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천국을 얻기 위해서 혹은 윤회로부터 개인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서 세속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분은 이런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을 전적으로 망각했다면, 자신이 자유로워진다거나, 어떤 천국에 갈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생각할 리가 없다. 명심해라. 모든 이기적인 욕망은 그 목표가 아무리 높은 것일지라도 자신을 속박한다는 것과, 그것을 없애기 전까지 그 사람은 스승의 일에 완전히 자유롭게 헌신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이기적인 욕망이 사라졌다 할지라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한 결과를 보고자 하는 욕망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도운 다면, 자신이 그를 얼마나 쓸모 있게 도와주었는지 알고 싶을 것이다. 아마도 여러분은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것을 알아주길 바라고, 감사하게 여기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그것도 욕망이며, 또한 신뢰의 결여이다. 여러분이 돕는데 힘을 쏟는다면, 여러분이 알든 모르든 반드시 결과가 있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법”을 안다면, 반드시 그러한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정의를 위해서 바르게 행동해야지, 보답을 기대하고 행동해서는 안된다. 일 자체를 위해서 일 해야지 결과를 보기 위해서 일을 해서는 안된다. 여러분은 세상을 위한 봉사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세상을 사랑하고 헌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적(싸이킥) 능력을 바라지 마라. 여러분이 그 능력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스승께서 생각하신다면, 그런 능력은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너무 일찍 그런 힘을 억지로 가지게 되면, 장애가 되는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때때로 그런 힘의 소유자는 기만적인 ‘자연령’에게 끌려 다니거나, 자만심이 생겨서 자신은 실수를 범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얻는데 쓸 수 있는 시간과 힘을 다른 선한 일을 위하여 쓸 수도 있다. 영적 능력은 발전해 감에 따라 자연히 생기게 되며, 당연히 생겨야 한다. 만약 스승께서 보시기에 여러분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스승께서 그런 능력을 안전하게 개발하는 방법을 일러주실 것이다. 그때까지 여러분은 영적 능력을 갖지 않고 일하는 것이 더 좋다.
또한 여러분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생겨나는 사소한 욕망들도 경계해야 한다. 절대로 돋보이거나 현명해 보이려고 하지 마라. 말하려는 욕망을 갖지 마라.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히 진실하고 친절하고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없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좋다. 말하기 전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 특질을 가지고 있는지 잘 생각하여 말하라. 만일 그런 특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말하지 마라.
지금이라도 말하기 전에 잘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입문하게 되면, 말해서는 안될 말을 하지 않도록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말들 대부분은 불필요하며, 우매한 말들이다. 그것이 험담일 경우에는 사악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보다는 경청하는 습관을 길러라. 직접 의견을 묻지 않는다면, 의견을 제시하지 마라. 그러므로 네 가지 자질은 다음과 같다: “지성, 용기, 의지 그리고 침묵.” 그리고 이들 네 가지 중 마지막 침묵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또 한 가지 흔히 생기는 욕망 중에 엄격하게 억제해야 할 것은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거나, 어떤 것을 믿거나 말하거나 하는 것은 여러분의 일이 아니며, 여러분은 그 사람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 사람이 타인을 방해하지 않는 한, 그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할 완전한 권리가 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은 자유를 타인에게도 허용해야 하며, 그가 그런 자유를 행사하고 있을 때, 여러분은 그것에 대해서 말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의 행동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기회를 엿보아 매우 정중하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하라. 그러면 여러분은 그를 납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렇게 하더라도 부적절한 간섭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어떤 이유로도 여러분은 그것을 제 삼자에게 말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같은 행동은 매우 사악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린아이나 동물에게 잔인한 학대를 가하는 경우를 본다면, 그것을 못하도록 막는 것이 여러분의 의무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법을 어기는 것을 여러분이 보았다면, 신고를 해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면, 그 사람이 잘못한 점을 부드럽게 말해주는 것이 여러분의 의무가 될 것이다. 그런 경우이외에는 자신의 일에 전념하고 침묵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
Ⅲ. 선 행
스승께서 가르쳐주신, 행동에 특별히 필요한 여섯 가지 점은 다음과 같다.
1. 마음의 자제
2. 행동의 자제
3. 관대함
4. 명랑함
5. 일점집중성
6. 확신감
〔이들 중 일부는 앞에서 말한 자질들과 마찬가지로 때때로 다르게 번역되어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 필자는 스승께서 필자에게 설명하실 때 사용한 명칭들을 그대로 쓰고 있다.〕
1. 마음의 자제
무욕이라는 자질은 아스트랄체를 제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멘탈체에도 같다. 성질을 제어해서 어떤 분노나 초조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마음을 통제해서 생각이 언제나 차분하고 침착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음을 통하여 신경의 흥분을 자제하면, 신경의 혼란을 최소한으로 줄일 것이다. 신경의 안정은 매우 어렵다. 길을 준비할 때, 신체가 더욱 민감해져서 소리나 충격에 신경들이 쉽게 교란되며, 어떤 작은 압력에도 예민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침착한 마음은 또한 용기를 뜻하므로, 여러분은 도의 길에서 시련이나 곤란을 두려움 없이 넘길 수가 있다. 그것은 또한 침착함이 시종일관 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쉽게 다룰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소한 걱정거리에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하지만, 여러분은 그것을 피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외부로부터 생기는 일, 즉 슬픔이나 사고, 질병이나 상실 등, 이런 일들은 아무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며, 이런 일 때문에 마음의 침착함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스승께서 가르치셨다. 그런 일들은 과거 행위의 결과이므로, 그런 일들이 닥치면, 여러분은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고, 모든 악은 일시적이며 여러분의 의무는 언제나 즐겁게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한 슬픔이나 고난은 여러분의 과거 생에 속한 것이지, 현재 생에 속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바꿀 수 없으며,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그것보다 현재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라. 그것은 미래생의 일을 만드는 것이며,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다.
결코 슬픔이나 우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 우울함은 잘못된 일이다. 왜냐하면 우울함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그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든다. 여러분은 그렇게 할 권리가 없다. 그러므로 만약 그런 기분이 생기면, 즉시 떨쳐 버려야 한다.
또한 여러분은 생각을 통제해야 한다. 여러분들의 생각이 산만하지 않도록 하라.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그 일에 모든 생각을 집중시켜라. 정신이 태만하지 않도록 하고, 항상 좋은 생각을 마음속에 갖고, 마음이 자유스러울 때에는 언제든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도록 하라.
여러분들의 ‘생각의 힘’을 매일 매일 선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라. 진화해 가는 방향의 힘이 되도록 해라. 매일 매일 슬퍼하거나 고통 받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생각해서, 그들에게 사랑의 생각을 쏟아 부어라.
자만심을 억제하라. 왜냐하면 자만심은 오직 무지에서만 생겨나기 때문이다. 무지한 사람은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이런 저런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현명한 사람은 신(神)만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며, 모든 좋은 일은 신(神)만이 하신다는 것을 안다.
2. 행동의 자제
만약 여러분의 생각이 바르다면, 여러분은 행동에 거의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에게 도움을 주려면, 행동에 생각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게을러서는 안되며, 언제나 선한 일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러나 여러분이 할 일은 여러분 자신의 의무이지 다른 사람의 의무가 아니다. 타인의 허락을 받아서 그 사람을 도울 때만 그 사람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필요하다면 항상 도울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으되, 간섭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배워야 할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의 일에 신경 쓰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여러분이 해야할 일이다.
여러분이 더 고차원의 일을 한다고 해서 일상적인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상적인 일을 소홀히 한다면, 여러분은 다른 일에 봉사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여러분은 새로운 세속적 의무를 맡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미 맡고 있는 일들을 완벽하게 완수해야 한다. 여러분이 맡고 있는 일들은 여러분 자신이 인정하는 ‘분명하고 이성적인’ 일이어야 하지,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부과하려고 하는 일이어서는 안된다. 만약 여러분이 스승의 제자가 되길 원한다면, 일상적인 일을 타인보다 잘해야 하며 못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스승을 위해서 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3. 관대함
여러분은 누구에게나 완전하게 관대해야 하며, 다른 종교의 교리에 대해서도 자신의 종교와 마찬가지로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종교도 바로 자신의 종교와 마찬가지로 ‘정상’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돕기 위해서 여러분은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완전한 관용을 베풀기 위해서, 우선 맹신과 미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떤 의식(儀式)도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의식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자신이 무언가 좀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직도 의식을 고집하는 사람을 비난해선 안된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다만, 그들이 진리를 알고 있는 당신에게 간섭하지 못하게 하라. 그들은 여러분에게 그런 의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여러분은 이미 그런 의식에서 벗어났다. 모든 일에 관대하고 친절해라.
이제 여러분의 눈이 열렸기 때문에, 옛날의 신조나 의식들이 터무니없게 보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진짜 터무니없는 것들이다. 비록 여러분이 그런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더라도, 아직도 선량한 영혼들을 위해서 존중하라. 그들에게는 아직도 그런 신조나 의식이 중요하다. 그것들은 그것들 나름대로의 입장과 위치와 용도가 있다. 그것들은 여러분이 어린 시절에 글씨를 쓸 때, 글씨를 자유스럽게 잘 쓸 때까지 안내 역할을 해준 점선과 같은 것들이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점선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때는 지나갔다.
옛날의 어떤 위대한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어린애처럼 말하고, 어린애처럼 이해하고, 어린애처럼 생각하였다. 그러나 어른이 되자, 어린애다운 것들을 버렸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망각하고, 어린이에 대한 동정심을 잊어버린 사람은 어린이를 가르치거나 도와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자상하고 다정하며 너그럽게 보아라. 불교를 믿는 사람이건, 힌두교를 믿는 사람이건, 배화교를 믿는 사람이건 혹은 기독교나 회교를 믿는 사람이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하라.
4. 명랑함
여러분은 자신의 카르마를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어떤 일이건, 자신에게 닥치는 고난을 명예로 여기며 참아 넘겨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카르마의 주(主)”가 여러분은 도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고난이 더 심하지 않다는 것에 감사하라. 여러분의 나쁜 카르마를 다 소진해서 여러분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여러분은 스승께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라. 스승에게 헌신함으로써, 여러분은 백 생이 걸릴 수도 있는 카르마를 한 두 생 사이에 다하도록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카르마에서 가장 잘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며 감수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에 대한 감정’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카르마는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것, 비록 그것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빼앗아가 버릴 수도 있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언제든지 버릴 각오를 해야 하며, 기꺼이 무엇이든지 버릴 준비를 해야 한다. 때때로 스승은 그의 제자를 통해서 스승의 힘을 쏟아 부을 때가 있다. 그러나 제자가 우울하면,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명랑함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을 위한 규칙이 된다.
5. 일점집중성
여러분이 자신 앞에 정해 놓아야 할 한 가지 일은, 스승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야할 그 어떤 일이 여러분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스승의 일만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여러분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유익하고 이타적인 일은 스승의 일이며, 여러분은 스승을 위해서 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하는 일 하나 하나가 최고의 일이 될 수 있도록 모든 세심한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옛 위대한 스승은 다음과 같이 썼다: “네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일을 할 때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신(神)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라.” 만일 스승께서 당장 와서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을 보신다면, 여러분은 그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한다. 아는 사람들은 스승의 이런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더 오래된 가르침이 또 하나 있다: “너의 손이 해야 할 일을 찾았을 때, 그 일이 어떤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점집중성’은 이런 뜻도 가지고 있다. 즉 여러분이 들어선 길에서 비록 일순간일지라도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의 방향을 바꾸어 놓게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어떤 세속적인 유혹이나 향락 혹은 애정도 여러분을 옆길로 나가게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여러분 자신은 길과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길이 여러분 본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다른 어떤 생각도 거의 하지 않고, 그 길을 따라가며, 그 길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모나드’인 여러분 자신이 이것을 결정했다. 그 길로부터 분리된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으로부터 분리된다는 것이다.
6. 확신감
여러분은 여러분의 스승을 믿어야 하고,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만일 여러분이 스승을 만난 적이 있다면, 여러분은 수많은 생과 사를 거치면서 끝까지 그 분을 믿을 것이다. 비록 아직도 스승을 만나 뵙지 못했다 해도, 그 분을 실감하기 위해서 한층 더 믿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스승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을 도와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완전한 신뢰가 없다면, 사랑과 힘의 완전한 흐름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여러분은 자신을 믿어야 한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느낀다면, 여러분은 자신을 모르는 것이다. 여러분은 단지 흙탕물 속에 떨어진 연약한 외피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참다운 여러분은 신(神) 자신의 불꽃중 하나이며, 전능한 신은 여러분 속에 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못할 일이 없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사람이 한 일이면, 사람이 할 수 있다. 나는 사람이고 또한 사람 속에 내재한 신이다.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할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면, 여러분의 의지는 담금질한 강철과 같아야 한다.
Ⅳ. 사 랑
모든 자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충분히 강한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랑은 다른 나머지 자질들을 갖추도록 하게 만든다. 다른 모든 자질들을 갖추었다 해도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충분하지 않다. 종종 이것은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나 혹은 신과 합일을 이루려는 강한 욕망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면, 이기적인 의미로 들릴 것이고, 사랑의 의미를 부분적으로밖에 나타내지 못한다. 사랑이란 욕망이라기보다 오히려 의지, 결의 그리고 결심이다. 사랑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이런 결의가 여러분의 심성 전체에 가득 해야 하고 다른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야 한다. 사랑은 신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의지이다. 여러분의 피곤함이나 고통에서 탈출하고자 함이 아니라, 신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신과 더불어 신처럼 행동하고자 함이다. 신은 사랑이기에, 만약 여러분이 신과 하나가 된다면, 완전한 이타심과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사랑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살아있는 어떤 생물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다. 둘째, 항상 누군가를 도울 기회를 찾도록 한다.
첫째, 해하지 마라. 세 가지 악행이 세상의 어떤 다른 죄보다 더 해롭다. 즉, 험담, 잔인함, 그리고 미신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랑에 반하는 악행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신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채우려는 사람은 이 세 가지를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험담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보라. 그것은 악한 생각에서 비롯되므로, 그것 자체가 악이다. 모든 사람이나 모든 사물에는 선이 있고, 또한 악도 있다. 우리는 그 중에 하나를 생각함으로써 강화할 수 있고, 우리들은 진화를 촉진하거나 방해할 수도 있다. 우리는 로고스의 의지를 행하거나, 거기에 저항할 수 있다. 만일 여러분이 타인 속에 있는 악을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동시에 세 가지 악행을 하는 셈이다.
(1) 여러분은 이웃 사람들을 좋은 생각 대신 악한 생각으로 채우는 것이며, 따라서 세상의 비애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2) 만일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사람 속에 악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악을 강화하고 사육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형제를 더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쁘게 악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악은 그 사람 속에 없고, 단지 여러분이 그런 환상을 가질 뿐이다. 그래서 그런 여러분의 악한 생각이 형제들로 하여금 나쁜 일을 하도록 유혹한다. 그가 아직 완전하지 않다면, 여러분의 생각은 그를 여러분이 생각한 것처럼 만들게 된다.
(3)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선한 생각 대신 악한 생각으로 채운다. 그리하여 자신의 성장을 저해하고, 자신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닌 추악하고 곤혹스러운 존재로 만든다.
험담은 험담하는 자신과 그 대상을 해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까지도 죄악의 공범자로 만들려고 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그 이야기를 믿기를 바라며, 악의에 찬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열심히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와 함께 악한 생각을 그 가련한 희생자에게 퍼붓는다. 이와 같은 일은 매일 매일 일어나며, 한사람이 아닌 수천 명이 험담을 한다. 여러분은 이것이 얼마나 저속하고 야비한 죄인지 알겠는가? 여러분은 전적으로 이런 것을 피해야 한다. 누구라도 절대로 나쁘게 말하지 마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듣지 말고, 부드럽게 이렇게 말하라: “아마 그것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비록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친절하다.”
다음은 잔인함에 대해서다. 잔인함에는 의도적인 것과 의도적이지 않는 것 두 종류가 있다. 의도적인 잔인함은 일부러 다른 생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죄악 중에서 가장 심한 것이다. 사람의 행위라기보다는 악마의 짓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느냐고 말하겠지만, 인간은 그런 일을 자주 해왔고, 지금도 매일 매일 저지르고 있다. 종교 재판관들이 그런 짓을 했고, 많은 종교인들이 종교라는 이름을 내세워 그런 짓을 했다. 생체 해부학자들도 그렇게 하며, 많은 선생님들도 습관적으로 잔인한 짓을 한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잔인함을 습관 탓으로 돌리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죄를 범한다고 해서 죄가 아닐 수는 없다. 카르마는 습관을 개의치 않으며, 잔인성에 대한 카르마는 모든 것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다. 적어도 인도에서는 그런 것이 습관이라는 변명으로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를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신의 피조물들을 죽이고 그것을 ‘스포츠’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잔인한 운명은 반드시 찾아온다.
나는 여러분이 그런 나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신의 사랑을 위하여 기회가 오면, 여러분은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못하도록 분명히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잔인함은 행동 못지않게 말속에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의도로 말하는 사람은 같은 죄를 짓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때로는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악의에 찬 말 한마디만큼이나 해를 끼친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행해지는 잔인함에 대해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주로 생각이 부족한 데서 기인한다. 사람은 욕심이나 탐욕으로 가득 차 있어서, 급료를 너무 적게 지불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고통을 생각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욕정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영혼과 육체를 파멸시키는지 생각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불과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정해진 날에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급료를 못 받은 사람들이 겪을 고통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너무 많은 고통이 단순한 부주의로 인해서 일어난다. 자기의 행동이 타인에게 주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카르마는 결코 잊지 않으며, 사람이 잊었다는 것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만일 여러분이 “도(道)의 길”에 들어서고자 한다면, 생각 없이 행한 잔인함을 저지르지 않도록 자기가 하는 일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신은 또 다른 큰 악이다. 그것은 매우 혹독한 잔인성을 일으킨다. 미신의 노예가 된 자는 현명한 사람을 경멸하고, 자기가 하는 일을 그들에게도 강요하려고 한다. 동물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미신에 의하여 저질러진 엄청난 대량학살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인간의 음식으로서 고기가 필요하다는 더욱 잔인한 미신도 생각해 보라. 미신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는 인도의 억압된 계층에게 가해진 처우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이처럼 나쁜 악이 형제애의 의무를 아는 사람들에게도 무심한 잔인성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생각해 보라. 미신이라는 악몽에 동요되어서, 신의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사람들은 많은 죄를 저질렀다. 그러므로 그러한 잔혹함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들 세 가지의 큰 죄를 여러분은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죄들은 여러분이 진보하는 데 치명적이며, 사랑에 대한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죄를 짓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행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여러분은 봉사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며, 주위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이것을 할 수 있도록 항상 주의해야 한다. 여러분은 매일 사소한 일에 봉사하는 습관이 형성되도록 해서, 위대한 일을 할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러분이 신과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신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달하도록 흐를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도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자신을 망각한다. 그는 마치 신의 손에 있는 펜과 같은 것이어서, 그 펜을 통하여 신의 생각이 지상에 표현되므로, 그런 펜이 없다면 신의 생각이 나타날 수가 없다. 또한 그는 동시에 살아있는 불의 상징으로, 신성한 사랑을 이 세상에 비추는 역할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도움을 줄 수 있게 하는 지혜, 그 지혜를 안내하는 의지, 그리고 그 의지에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사랑, 이것들이 바로 여러분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들이다. 지혜, 의지 그리고 사랑은 로고스의 세 가지 면이다. 그리고 신께 봉사하고자 하는 여러분은 이러한 면들을 세상에 나타내어야 한다.
스승의 말씀을 기다리며
숨겨진 빛을 지켜본다.
스승의 명령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며
이 세상의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다.
많은 군중들 머리 너머로
스승의 미세한 신호를 본다.
대지의 시끄러운 노래 위에서
스승의 희미한 속삭임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