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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스스로 사랑을 아는 사람 말고는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자신의 사랑을 믿는 한도 내에서만
타인의 사랑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회상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감정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그 심경은 완전히 말로 옮겨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긴 기쁨과 슬픔이 극치인 순간에는
누구나 홀로 연주하는 ‘말없는 생각’이라는 곡조가 있게 마련이다.
그때 내 느낌은 슬픔도 기쁨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려 하지만
목적지에 이르기 전에 산화되고 마는 유성처럼 날고 있었다.
실상 나와 그녀의 영혼을 꿰뚫고 간 그 봄은 얼마나 우수에 찬 계절이었던가!
흔히 5월에는 이제 곧 장미가 시들 거란 생각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의 그 계절에는 매일 저녁 꽃잎이 하나씩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경고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옛 스승은 자신의 교리를 결코 엄밀하게 논증하려고 애쓰지 않았거든요.
그는 씨 뿌리는 농부처럼, 단 몇 알의 씨앗이라도 비옥한 땅에 떨어지면
천 갑절 결실을 맺으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그냥 자신의 교리를 뿌린 거랍니다.
그 신학의 스승이 그런 식으로 자기 교리를 굳이 입증하려 애쓰지 않는 이유는
그가 지닌 인식이 그만큼 충만했기 때문일 겁니다.
논증이라는 형식을 묵살할 만큼.
‘신이 모습을 바꾸어 인간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지,
인간이 신으로 화할 수는 없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따라서 신비주의는 인간 영혼을 단련시키는 일종의 불은 되겠지만,
인간의 영혼을 가마솥의 끓는 물처럼 증발시키지는 못합니다.
자아의 허무를 인식한 자는 그 자아가 곧 진정한 신성의 반영이라는 것도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신성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은, 그것이 비록 불꽃의 잔광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신적인 실체를 자신 안에 내포합니다.
차라리 나는 광채 없는 불꽃이나 빛이 없는 태양, 또는 피조물이 없는 창조주가 무슨 의미를 갖느냐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하느님의 빛에서 나와 그 빛 안에서 합일이 이루어지는 곳에선
정신적 교만이나 경솔한 방종, 분방한 기질을 볼 수 없으며,
그곳엔 오로지 끝없는 겸허함, 무한히 자신을 움츠린 우려의 마음,
단정함과 성실, 평등과 진실, 평화로움과 만족스러움,
요컨대 덕성에 속한 일체의 것이 자리하게 되느니라,
그렇지 않은 경우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합일은 이미 아니로다.
<독일 신학 이십팔장 中>
<파묻힌 생명> Matthew Arnold(1822~1888)
우리사이에는 익살스러운 재담이 가벼이 날고 있다.
그러나 보라, 나의 눈이 눈물로 젖어 있음을!
이름 없는 슬픔이 나를 덮쳐온다.
그렇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재담을 주고받을 수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웃음을 건넬 수 있음을!
그러나 이 가슴 속에는 남모르는 무엇이 감추어져 있으니,
그것은 너의 가벼운 이야기도 몰아낼 수 없는 것,
너의 손을 이리 다오, 그리고 잠시만 침묵해 다오.
다만 너의 그 맑은 눈을 내게로 향해 다오.
너의 영혼 가장 깊은 곳을 읽을 수 있도록, 사랑하는 이여!
아, 사랑조차 이토록 약한 것일까?
마음을 열어 그것을 말하게 할 힘이 없는가?
사랑하는 이들조차 진정 느끼는 것을
서로 표현해낼 힘을 갖지 못한 것일까?
나는 알고 있었지,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감추는 것을,
혹시나 자신의 생각이 드러나면,
남들에게 무심히 거부당할까, 아니면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또한 알고 있었지, 사람들은
거짓 탈을 쓰고 살아 움직인다는 것을,
남들에게나 자신에게나 이방인으로 머물러 있다는 것 – 그러나
모든 인간들의 가슴속에서는 똑같은 심장이 고동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는 이여! -
그 같은 저주가 우리의 가슴과 우리의 목소리까지 마비시킨단 말인가? -
그렇게 우리도 벙어리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아! 단 한순간이라도 우리의 심장을 열어젖힐 수 있다면,
우리의 입술을 묶고 있는 사슬을 풀 수 있다면,
그러나 그것을 묶고 있는 것은 깊은 운명의 손길인 것을.
운명은,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아이가 될는지를 예지하고 -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일들에 몰두하며
온갖 싸움질에 빠져들며,
사뭇 본연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이 변할 수 있음을 예지하고 -
인간의 경박스런 놀음 가운데서도
순수한 자아를 지키도록, 방종 가운데서도
존재의 법칙에 따르도록,
숨어 있는 인생의 강으로 하여금
우리 가슴 깊디깊은 곳을 관류해
보이지 않는 흐름을 추진하도록 명했다.
하여 우리의 눈은 그 묻힌 흐름을
보지 못하며, 비록 그 섭리의 흐름을 타고 있으되,
우리의 모습은 불확실함 속을
표류하는 장님 같은 것.
그러나 붐비는 세상의 길목에서도
소란스런 투쟁 속에서도
우리의 묻힌 생을 알고 싶은
무한한 욕구가 솟구치니,
그것은 우리 삶의 참된 본연의 길을 알고자
온 힘과 불꽃을 사르고 싶은 갈증이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이토록 세차게 고동치는
심장의 신비를 캐려는 – 우리의 삶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알고자 하는 열망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가슴을 파헤쳐보았는가.
그러나 슬프게도! 석연하게 그 광맥을 파헤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몇 천 갈래 길에 서 보았고,
길목마다에서 정신과 힘을 보았다.
그러나 단 한순간도, 우리 본연의 길에 서보지도,
본연의 자아를 만난 적도 없다.
우리의 가슴을 통해 흐르는 그 숱한 이름 모를 감정 중에
단 한 가닥도 표현해낼 능력이 없었다.
하여, 그 감정들은 표현을 찾지 못한 채 영원히 흐르고 있다.
긴 세월 헛되이 우리는 숨겨진 자아를 좇아
말하고 행동하고자 한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웅변이며
그럴싸하지만 – 아, 그건 진실은 아닌 것이다!
하여 우리는 이 같은 내면의 투쟁에
더는 시달리고자 하지 않는다.
속절없는 순간을 향해 요청한다, 몇 천 가지 무위한 행위를,
그것을 망각하고 마비시킬 힘을.
아, 그러면 그 순간 즉각 응해 와서 우리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때로는, 몽롱하게 그림자처럼,
끝없이 아득한 어느 왕국에서 오듯
영혼의 깊은 현실에서
미풍과 부유하는 메아리가 찾아와
우리의 날들에 우울을 더해준다.
다만 – 아주 드물게 -
사랑하는 이의 손길이 우리의 손에 놓일 때,
무한한 시간이 광채를 띠고 몰려와
녹초가 되어
우리의 눈이 상대의 말을 읽어낼 수 있을 때,
세상사에 귀 막은 우리 귀에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애무하듯 울려올 때 -
그때에는 우리 가슴속 어디멘가 빗장이 열리고,
오랫동안 잊었던 감정의 맥박이 고동을 치게 된다.
눈은 내면을 향하고, 가슴은 평온해지며,
이제 우리가 뜻하는 것을 말하게 되고
우리의 소망을 알게 된다.
굽이치는 생의 속삭임을 듣게 되며, 생의 강물이 흘러가는
초원을, 태풍과 미풍을 느낀다.
날아 도망치는 그림자 같은 휴식을 잡으려고
영원한 추격을 벌이는 인간의 치열한 경주에,
마침내 휴식이 찾아온다.
이제 서늘한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미문(未聞)의 고요가 그의 가슴을 덮는다.
그때 그는 생각하리라.
자신의 생명을 잉태한 언덕과
그 생명이 흘러갈 태양을 이제 알고 있노라고.
*’Deutsch’라는 말의 어원을 보면 특정한 민족이나 종족을 지칭한 이름에서
파생된 말이 아니고 그 자체가 ‘민족, 종족에 속한’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이 말은 지배층 이었던 라틴 민족에 대립되는 모든 것 –
즉 민족의식이나 사람, 땅, 언어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어왔다.
좋은 의미로는 성실, 신의, 철저성을, 나쁜 의미로는 우둔함, 고루함을 지칭한다.
*파묻힌 생명 – Matthew Arnold(1822~1888) : 영국의 시인이며 비평가.
고대 정형을 따른 시 형식에 새로운 삶의 내용과 이상을 추구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1857년에서 1867년까지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있었다.
따라서 이 책 <독일인의 사랑>이 씌어질 무렵에는 저자의 동료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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