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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크샤(moksha), 해탈

 

 <모크샤><영혼의 해방>을 일컫는 말로서 아트만이 윤회의 악순환에서 풀려난 상태를 말한다. 이를 중국인들은 <해탈>(解脫)이라 번역했다.

 

  유한한 행복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면 그때 우린 더 높은 행복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이 불멸의 행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선 첫째로 나 자신의 본성인 아트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다음 그걸 바탕으로 이 우주의 본질인 브라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나 자신의 본성인 아트만과 브라만이 하나임을 경험해야 한다.

 

 모든 존재들은 본질적으로 순수하며 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본래부터 해탈의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만두까 우파니샤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브라만이며, 아트만은 곧 브라만이다.

만두까 우파니샤드

 

  우파니샤드에 의하면 과 인간은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서 폐쇄적인 두 존재가 아니라 <동일한 존재의 두 가지 표현 양식>인 것이다.

 

 

 

 

 

baba hanuman at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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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라(samsara, 輪廻), 영혼의 방황

 

<삼사라>란 단어에는 <흐르다>, <떠돌다>, <바퀴가 구르듯 끝없이 <굴러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마야에 현혹되어 우리 스스로가 행했던 그 행위(karma, )의 결과에 따라 삶과 죽음 사이를 끝없이 떠돌고 있다.”는 뜻이다.

 

이 윤회의 과정에는 다음의 세 차원이 있다.

첫째, 신들(demigods)의 영역인 열락의 차원(天上界)

둘째, 고통과 열락이 반반 섞인 인간의 차원(人間界)

셋째, 고통이 많은 짐승의 차원(畜生界)

 

죽은 다음 우리의 육체는 불에 태워진다. 그러면 그 불기운을 타고 영혼은 달()에 이르게 된다. 달에 이른 영혼은 구름이 되어 비()로 지상에 내려와 풀과 나무(곡식) 속으로 스며든다. 사람은 이 곡식으로 음식을 만드는데, 이 음식물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은 또 다른 인간의 육체 속으로 흡수된다. 이렇게 흡수된 음식물은 정액이 되어 여성의 자궁 속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자궁 속으로 들어간 정액은 자궁의 불기운()을 통해서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삶과 죽음의 순환은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간다.

<브리하드 아라냐까 우파니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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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maya), 창조의지와 물질

<마야>란 일종의 마술이란 뜻으로서 브라만의 창조의지(창조에너지)를 일컫는 말이며, 동시에 그 의지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 현상계(물질)를 지칭하는 말이다.

마야의 두 가지 특성

첫째, 흔들림 현상(reflection) : 흔들리는 물에 사물이 비취면 그 비췬 사물은 무수히 분화(分化)된 것처럼 보인다. 마야의 이 흔들림 현상 때문에 유일자인 브라만이 수많은 개체(아트만)처럼 분화되어 보인다. 즉 유일자인 브라만과 수많은 개체(아트만)가 실지로 분화되어 있다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절대적인 차원을 상대적인 이원(二元)의 차원으로 굴절시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 잘못된 인식 때문에 삼사라(samsara, 生死輪廻), 영혼의 기나긴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둘째, 베일 현상(veiling) : 커튼을 내리면 그 커튼에 가려 저쪽 사물이 희미하게 보인다. 마야의 이 베일 현상(은폐 현상) 때문에 브라만의 빛이 은폐되어 보인다. 이 베일 현상으로 하여 인과법칙, 공간과 시간, 그리고 형체와 명칭(존재)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 베일 현상은 우리의 올바른 식별력(識別力)을 흐리게 하고, 그로 하여 브라만을 감지하지 못하는 무지(無知)가 생겨난다.
이 무지를 avidya라 하는데, 이는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없는 <영적인 어둠>(spiritual darkness, 無明)을 뜻하는 말이다.

 

마야의 세 가지 성질(3 gunas)
마야의 세력권 안에 있는 이 현상계의 모든 존재들(인간, 도 식물, 생물, 무생물 일체)은 이 세 가지 성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첫째, 라자스(rajas) : 창조열정(상승력, 動性, 붉은색)을 말한다. 이 우주가 창조되고 모든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모두 이 라자스의 영향 때문이다.
둘째, 타마스(tamas) : 파괴 본능(하강력, 暗性, 검은색)을 말한다. 이 우주가 파괴되고 갖가지 재앙이 일어나며 생명이 죽는 것은 모두 이 타마스의 영향 때문이다.
셋째, 사트바(sattva) : 라쟈스와 타마스 사이에서 이 둘의 균형을 잡아 주는 힘(유지력, 平性, 흰색)을 말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저 별들이 제 궤도를 이탈하지 않으며 생명이 자라고 계절이 순환하는 것은 모두 이 사트바의 영향 때문이다.


마야의 가시화 두 가지 형태

첫째, 우주적인 환영체(宇宙幻影體, the cosmic illusion) : 유일자인 브라만은 마야의 이 우주적인 환영체를 통해 창조주, 유지자(이 세ㅔ상을 유지시키는 비슈누), 파괴자(악마)로 둔갑한다.
둘째, 개별적인 환영체(個別幻影體, the individual illusion) : 유일자인 브라만은 마야의 이 개별적인 환영체를 통해 아트만으로 산이나 나무, 돌, 동 식물, 인간의 육체 등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개체(Jiva)로 분화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마야와 브라만(아트만)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왜냐면 마야는 브라만 속에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브라만의 창조 에너지(창조 의지)의 가시화이기 때문이다.
브라만의 고요(본질) 속에는 마야의 물결(창조의지)이 굽이치고 있으며, 또한 마야의 물결 속에는 브라만의 고요가 깃들어 있다.

 

이처럼 마야는 브라만을 제한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마야는 브라만의 불가사의한 힘(창조의지)이기도 하다. 브라만(니르구나 브라만)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이 마야와 연결 되면서 역동적인 창조주(사구나 브라만)가 된다. 만일 이 마야를 작동시키지 않으면 브라만은 그 호흡작용(창조, 유지, 파괴)을 할 수 없다. 왜냐면 불생불멸적인 브라만은 그가 창조한 이 현상계(물질)의 가변성을 통해 호흡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저 거미가 그의 몸에서 거미줄을 뽑아 낸 다음 그 줄을 타고 활동하는 것과 같다.

저 누에는 그가 뽑아 낸 명주실 속에 숨어 있듯, 그(브라만)는 그 자신이 만든 이 마야의 장막 속에 숨어 있나니, 우리로 하여금 그(브라만) 속에서 그와 하나가 되게 하라.
- 스베따스바따라 우파니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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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니샤드

 

그는 결코 볼 수 없다.

왜냐면 그는 보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들을 수 없다.

왜냐면 그는 듣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왜냐면 그는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알 수 없다.

왜냐면 그는 아는 자이기 때문이다.

 

- 브리하드 아라냐까 우파니샤드

 

 

* Upa-ni-shad : 가까이(옆에, near) - 아래에(down) - 앉다(to sit)

"심오한 가르침을 전수받기 위해 제자가 스승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 발 <아래에> 겸허하게 <앉다>" 는 뜻

 

 

아트만(Atman, ), 영혼의 불멸성

 

<아트만>(Atman)이란 말은 <호흡>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로서독일어의 아트멘(Atmen,호흡하다)과 그 어원이 같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가면서 이 말은 <자아>(自我,self), <영혼>(soul), 또는 <내면의식>(內面意識, inner consciousness), <자각력>(自覺力, awareness)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브라만은 대우주(macrocosm), 아트만은 소우주(microsm). 브라만이 전체인 <>이라면 아트만은 그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체인 <나무> 한 그루 한그루에 해당한다.

 

아트만은 그 자각력(自覺力)의 강도에 따라 다음의 네 단계로 구분짓는다.

 

첫째, 잠깬 상태 : 감각의 세계로서 일상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감각기관으로 객관적 사물들을 지각하는 차원이다.

둘째, 꿈꾸는 상태 : 이미지의 세계로서 잠깬 상태에서 사물들을 지각했던 그 기억들을 근거로 그 자신의 주관을 섞어 꿈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차원이다.

 

그곳((꿈의 세계)에는 마차도 없고 마차를 끌고갈 말도 없고 길도 없다. 그러나 그 자신이 마차를 만들고 길을 만든다. 그곳에는 환희도 기쁨도 쾌락도 없다. 그러나 그 자신이 환희와 기쁨과 쾌락을 만든다. 왜냐면, 그는 그 자신의 꿈의 대상물들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깊은 잠의 상태 : 무의식세계로서 자신의 본성과 하나가 되어 깊이 휴식하는 차원이다.

 

깊은 잠 속에서는 모든 것이 물처럼 투명해진다. ,<보는 자><보여 지는 것>은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브라만(아트만)의 세계다. 이것이 바로 최고의 성취요 축복이며, 이것이 바로 가장 높은 세계다. 이 축복의 극히 적은 일부분으로 모든 생명체들은 살아가고 있다.

 

넷째, 순수의식 상태 : 깊은 잠의 상태에서 우린 자신의 본성과 하나가 되어 깊은 휴식에 들어간다. 그러나 여기 자각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의 본성과 하나 되었다>는 이 본질감을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넷째 순수의식 상태에서는 자각력이 빛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나 자신의 본성과 하나 되었다>는 이 사실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순수의식 상태는 <아트만의 절정> 또는 <아트만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잠깬 상태와 꿈꾸는 상태는 본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차원이다. 그리고 깊은 잠의 상태는 본질에 대한 인식력이 결여된 무의식 차원이다. 그러나 이 세차원이 부서지게 되면 순수의식 상태가 드러난다.

 

앞의 세 가지 상태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면 우린 잘못된 인식 차원과 인식력이 결여된 차원에 갇혀 버리게 된다. 이 세 가지 상태는 원인과 결과가 지배하는 인과법칙(因果法則)의 차원이다. 그러나 이 인과법칙의 차원에서 벗어나 순수의식 차원을 깨닫게 되면 우린 본다. 언제 어디서나 근원자 브라만을 보게 된다.

 

여기 두 마리 새가 있다.

이 둘은 절친한 친구로서 언제나 같은 나무(생명의 나무)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둘 가운데 먼젓새(지바트마, 自我, 행위자)는 언제나 나무열매를 먹기에 정신이 없다. 그러나 뒤의 새(파라마트마, 超自我, 주시자)는 열매를 먹고 있는 먼젓새를 지극히 응시하고 있다. 같은 나무에 앉아서 <먼젓새>는 자신의 나약함을 슬퍼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불멸의 존재인 <뒤의 새>를 알아 볼 때 그는 그 순간 이 모든 생존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문다까 우파니샤드

 

Jivatma는 어둠 속에서 고뇌하고 있으나 Paramatma는 빛 속에서 조용히 지바트마를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깨달은 이들은 이 둘을 빛과 그림자로 설명하고 있다.

까타 우파니샤드

 

 

 

 

 I'll find my way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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