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블라바츠키 롯지 회의록에서 발췌)
번역 유 명호
문: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 활동하는 "본질"이 어떤 것들입니까?
답: 보통의 꿈은 의미가 없는 환영(幻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고, 진정한 꿈과 구별해야 합니다. 보통의 꿈을 꾸는 동안 활동하고 있는 본질은 '카마(Kama)'입니다. '카마'란 인격아의 자리이며, '마나스'의 잠자는 기억들이 깨어나서 혼란스럽게 활동하는 욕망의 자리입니다.
문: "저급 마나스"란 무엇입니까?
답: 그것은 보통 "동물혼"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카발리스트들이 말하는 '네페쉬(Nephesh)'입니다. 저급마나스란 고급마나스 혹은 '영구 자아(permanent Ego)'에서 발산해 나오는 광선이며,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는 "본질"입니다. 동물들도 꿈을 꾸기 때문에, 동물들의 경우 저급마나스는 본능입니다.
'카마'와 '동물혼'의 복합적인 움직임은 순전히 기계적입니다. '카마'와 '동물혼' 속에 활동하고 있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본능입니다. 수면 중에 '카마'와 '저급마나스'는 여러 신경 중추로부터 기계적인 전기 쇼크를 받거나 보냅니다. 뇌는 그런 충격에 거의 인상을 받지 않고, 순서에 관계없이 그 충격들을 저장합니다.
눈을 떠서 깨어나 보면 이같은 인상들은 근저에 본질적 실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덧없는 그림자처럼 차츰 퇴색되어 갑니다. 충분하게 강한 인상를 받기만 하면, 뇌의 기억 작용은 그 인상들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들의 기억작용은 깨어나는 순간에 뇌가 받은 허술하고 뒤틀어진 인상만을 겨우 기록 할 정도입니다.
근대 생리학이나 생물학에서 '꿈'의 이러한 면에 대해서는 충분히 관찰되어졌고, 올바르게 설명되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이 꿈꾸는 것처럼 그다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과학에서 아직 미개척지는 진정한 꿈과 고급 자아의 경험들입니다. 고급 자아의 경험도 꿈이라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꿈이라고 말한다면, 다른 수면중의 "비젼"을 꿈이라 말하지 않고 다른 명칭으로 불러야 할 것입니다.
문: 보통의 꿈과 고급자아의 경험과는 어떻게 틀린 것입니까?
답: 만약 육체와는 독립적이며 죽어야 할 사람 속에 있는 불멸의 자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꿈의 성질과 기능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수면 중에 독립적인 사고력이 없는 육체라고 말하는 생기(生氣)를 가지고 있는 형체만이 남아 있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물론 이 말은 사실이다--주제가 더욱더 이해하기 어려워지게 됩니다.
우리들 속에 숨어있는 고급자아(Higher Ego) 혹은 영구 자아의 존재를 인정한다면--자아를 우리들이 고급아(Higher Self)라고 말하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일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공상으로 받아들여지며,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진정으로 '내면의 인간'의 삶과 경험의 책에서 찢어진 페이지이며, 깨어나는 순간에 우리들의 육체적 기억에 의해서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지만 왜곡되어져 끊어진 약간의 기억만이 남아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 기억은 내면의 인간이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그 내면의 인간이 목격한 생각이나 사실과 행했던 행위의 작은 부분의 인상들을 기계적으로 잡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자아는 물질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때마다, 즉 육체 인간이 잠을 자는 동안에 육체라고 말하는 감옥 안에 있으면서, 자아 자체의 별개의 삶를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아야말로 '행위자'이고, '진정한 인간'이며, 인간의 '진실한 자아'입니다. 그러나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 육체 인간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며, 아무 의식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외적인 인간(육체), 즉 뇌와 사고 기관(器官)을 가지고 있는 인격아는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으나 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아를 죄수로 그리고 육체적 인격아를 '죄수의 간수'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만약 간수가 잠에 빠져들면, 죄수는 도망치거나 혹은 적어도 감옥 벽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간수가 반쯤 잠이 든 상태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흘끗 흘끗 창을 통해서 창 앞에서 움직이고 있는 일종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것처럼, 죄수를 간간히 볼 수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간수는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죄수의 진짜의 행위, 특히 생각에 관해서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문: 자아의 생각이 인격아에게 인상을 주지 않습니까?
답: 수면중에는 결코 없습니다. 진정한 자아는 보잘 것 없는, 일시적인 인격아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깨어나 있을 때에는 고급 자아의 생각과 '목소리'는 간수, 즉 육체 인간에게 미치는 경우도 있고, 미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급 자아의 생각과 목소리는 양심의 소리이지만, 육체 인간이 자고 있는 동안에, 그것은 "황야에서의 외침"과 같습니다.
'진정한 인간', 즉 불사의 '개성'의 생각 속에서, 과거와 미래의 화상(化像)이나 '비젼'은 현재의 화상이나 '비젼'과 똑같이 현실적입니다. 또한 진정한 인간의 생각은 우리들의 생각, 말하자면 우리들의 뇌기능에서 생기는 주관적인 화상과 같은 것이 아니고, 그것은 살아 있는 행위이며 현재의 사실입니다.
생각이 구체적인 사물이었을 때에, 또 인간이 그것들을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던 옛날에도 똑같이 진정한 인간의 마음은 현실 그것입니다. 그 당시에 왜 표현할 필요가 없었던가 하면, 마음은 '크리야-사크티(Kriya-Sakti)'의 힘에 의하여 즉시 활동으로 실현되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야-샤크티'란 생각하는 것을 그 자리에서 즉시 눈에 보이는 형체로 바꾸는 신비력이며, 현재 시각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우리들에게 객관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제 3 인종의 '인간'에게 있어서 그러한 형체들은 아주 객관적이었습니다.
문: 그렇다면 때때로 이와 같은 자아가 생각하는 단편들이 조금일지라도 우리의 육체적인 기억으로 전해지는 것을 비교(秘敎) 철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하십니까?
답: 그와 같은 것들은 모두가 수면 중에 있는 뇌에 반영입니다. 마치 텐트 속에 있는 사람이 깨어나서 텐트 벽에 비치는 그림자들을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깨어난 사람은 자신의 꿈에서 여러 가지들을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며, 또 정말 자신이 무엇을 경험한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의 꿈은 그가 어설프게 보아온 진정한 자아의 '생각-행동'인 것입니다.
이 사람이 완전히 눈을 뜨고 깨어나게 되면, 기억은 더욱더 왜곡되어져서 수면자를 깨어나도록 한 자극의 영향을 받아 육체 뇌로부터 투사된 '이미지'와 합쳐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연상(聯想)의 힘에 의해서 이러한 회상(回想)은 연속적인 일련의 생각들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문: 오래 전에 일어났던 것들을 밤 동안에 자아가 어떻게 행할 수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꿈은 주관적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답: 꿈꾸는 상태 그 자체가 깨어 있는 우리들과 깨어있는 동안에 경험하는 이 세계에서 주관적일 때, 어떻게 꿈들이 자아에게 주관적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에게 우리들의 행위가 객관적인 것처럼, 마찬가지로 꿈을 꾸는 자, 즉 자아에게 있어서 자아 자신의 세계에 있는 것들은 객관적인 것입니다.
세가지 근본원리(The Three Fundamental Principles)
번역 강 구영
The Secret Doctrine (by H.P. Blavatsky) 은 세가지 근본 원리를 확립하였다. 신지학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이 몇 가지 기본 개념들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과거에 존재하였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들의 根本原因(Cause)인 唯一無限原理(One Infinite Principle)가 있다. 이 원인인 自身(Self)은 모든 공간에 존재하며, 우리들은 그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없고 변화하지 않는 바로 그것(THAT)이다.
우리가 인지하고 알고 경험하는 모든 것 뒤에는 바로 이 통합된 하나의 自身(One undivided Self) 이 있다. 감각기관을 통하여 보고 알거나 또는 경험하는 것들 이외의 것을 인지하고 알고 경험하는 우리 안에 있는 능력은 바로 이 唯一自身(One Self)이고, 하나의 意識(Consciousness)이며,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있고, 모든 존재 안에 있는 능력이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兄弟愛(Brotherhood) --- 인간 이상의 모든 존재와 인간 이하의 모든 존재를 하나로 결속하는 끈 --- 의 기반이 있는 것이다.
둘째,
두번째 원리, 즉 法(Law)은 카르마(Karma)라고 불리운다. 이것은 자연(Nature) 안에 존재하는 되풀이되는 순환 법칙으로서 깨진 균형을 회복하려는 끊임없는 흐름이다. 카르마는 우리의 도덕성에 적용되는 법칙이다. 그것은 윤리적인 인과법칙이고, 正義(justice)와 賞罰의 법칙이며, 탄생과 재탄생(rebirth)의 원인이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단지 원인에 따라 발생하는 결과이고, 작용과 반작용이며, 모든 생각과 행동의 결과이다. 카르마는 문자상으로 행위(action)를 의미한다.
신지학에서는 우주를 지성을 가진 전체(an intelligent whole)로 본다. 따라서 우주 안에서의 모든 움직임은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이며 이 결과는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행동하고, 좋건 나쁘건 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우리들이 필연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는 반응은 결국 우리가 스스로 야기한 원인들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절대정의의 개념과 자유의지의 핵심도 여기서 도출된다.
카르마와 관련된 또 다른 순환법칙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還生(Reincarnation)이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들은 혼(soul), 정신(mind), 및 영(spirit)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진화무대인 이 지구상에 신체를 빌어서 거듭 태어난다.
인간은 인간존재의 법칙에 따라서 이 지구상에서 진화를 완성해야 한다. 각각의 삶 안에서 각자는 하나의 인격(personality)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겁의 전체를 통하여 우리 자신 안에 있으며, 우리의 이름이나 모습 또는 기억과는 독립된 하나의 正體性(identity)을 느끼는 個人(individual)이다.
셋째,
우주의 모든 존재는 인식의 낮은 단계로부터 출발하여 보다 높은 個體化(individualization)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 세번째 원리이다. 인류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들은 인류의 단계를 거쳐 지나갔다.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무한한 우주 안에서 진화는 결코 멈출 수 없다. 누가 어느 시점에서 어느 수준의 단계에 도달했건 언제나 더 높은 가능성이 그 너머에 열려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경험, 즉 삶과 그 안에 있을 수 있는 客體(object)를 볼 때, 우리 스스로 바라는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Nature)이 우리에게 의도하는 모든 것들을 이루기에는 한 삶은 너무나 짧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경험의 규모와 다양성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다. 자연 안에 존재하는 진화하는 모든 형태의 知性(intelligence)은 과거에 사람이었거나 현재 사람이거나 앞으로 사람이 될 것이다.
삶의 중요한 질문들
번역 강 구영
우리는 삶 중에서 때때로 다음과 같은 물음을 갖게 된다: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삶이 몹시 괴로울 때에는 또한 다음의 물음을 갖는다: “삶은 그저 우연인가? 세상은 공정한가? 신은 존재하는가?”
세상의 위대한 종교들은 위의 질문들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답을 주며, 현대의 과학 이론들도 몇몇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 답변들에 대하여 완전하게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답들이 우리의 머리를 만족시키더라도 때로는 가슴에 와 닿지 않으며, 가슴을 울리는 답변들이라도 마음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종교나 철학 그리고 과학이 제시하는 답변들에도 불구하고, 보다 논리적이고 감명을 받을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신지학(神智學, Theosophy)은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신지학은 매우 오래된 개념이다. 신지학 내용의 일부는 고대 세계의 종교와 철학에서 발견된다. 또 다른 내용들은 과거와 현재의 과학적 발견으로부터 온다. 신지학은 계시 또는 도그마로서 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신지학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철저한 심사와 숙고의 대상이다. 그러면, 신지학의 주요한 개념들을 살펴보자.
첫째, 우주는 그저 자연의 힘이 우연히 작용하는 장소는 아니라는 점이다. 우주가 생성된 이후의 모든 사건은 우주에 내재한 어떤 법칙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이 법칙들은 우주의식(宇宙意識, Universal Consciousness)의 표현이다. 전자(電子, electron)에서 가장 큰 별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안에 의식이 깃들어 있다.
이 근본적인 실재(實在, Reality)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에, 현자나 성인들은 그것을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신(神, God)” 이라 불렀고, 어떤 사람들은 “법(法, Law)”이라고 불렀으며, 또 다른 사람들은 “조물주(造物主,Great Architect)” 또는 “진화(進化, Evolution)”라고 불렀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특성이나 경험에 따라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 의식을 어떻게 간주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편의상 여기서는 신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둘째, 신의 본질, 즉 근본 실재는 모든 사람 안에 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썩어 없어질 육체가 아니다. 이 육체는 우리가 잠시 동안 입고 있다가 벗어버릴 의복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불멸의 혼(souls)이다. 신의 완전성은 우리 안에도 들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를 깨닫기 전에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성(神性, divine nature을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의 우리의 운명이다. 우리의 탄생은 마치 대장간이나 실험실에 들어가는 것과도 같다. 거기서 우리는 일과 경험을 통하여 서서히 우리의 능력을 펼쳐 나간다. 그러나 한 생애 만으로는 우리 안에 있는 신성을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되풀이하여 육화(肉化, incarnate)한다.
우리는 생명을 받아 태어나서 자라며, 활동하고, 일을 끝낸 후 돌아간다. 여기서 돌아간다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 이후의 휴식기간 동안, 우리가 계획했지만 이루지는 못했던 기쁨을 맛보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순화되고, 더욱 강해지고, 더욱 현명하게 되어 다시 탄생한다. 그래서 생각과 느낌과 행동에서 한 단계 올라 간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환생(還生, reincarnation)의 싸이클이다. 우리의 삶과 활동을 통하여 우리는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한다.
우리는 이타심(利他心,altruism) 또는 이기심(利己心, selfishness)의 발로에 의해서 선을 행하기도 하고 악을 행하기도 한다. 우리가 악을 행하면 우주의 조화를 깨뜨리게 되며, 우리는 그 조화를 다시 회복시켜야만 한다. 우리가 행한 악은 선행으로 갚아야 한다. 한편 우리의 선행은 더욱 큰 선행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이러한 씨를 심고 거두는 과정, 원인과 결과의 과정을 카르마(Karma)라고 부른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가져오는 재조정의 법칙이다.
모든 혼은 신성을 가졌으므로 모든 혼은 평등하다. 젊은 혼도 있고 나이 많은 혼도 있으나 모두가 형제요 자매이다. 탄생, 능력 및 환경의 차이, 그리고 인종, 종파, 성, 계급의 차이, 또한 선함과 악함의 차이 등 각 사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남자와 여자는 불가분의 “형제 관계 (brotherhood)”를 이룬다. 우리 모두는, 지위가 높건 낮건, 무식하건 현명하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도움으로써 더욱 성장한다. “형제관계”는 성장의 우주법칙이다.
이 “형제관계”는 사람은 물론 , 동물, 새, 어류, 식물, 산, 바다 등 모든 존재에까지 확대된다. 우리는 모든 존재와의 일치를 통하여 성장한다. 우리 안에 신성이 잠재해 있듯이 모든 존재 안에도 신성이 잠재해 있다. 이 신성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내재한 신이 그 아름다움을 발현하게 된다.
두 가지 영원한 신비가 있는데 하나는 신의 신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신비이다. 신에 대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선함, 거룩함, 진실함 및 아름다움은 우리 안에도 내재한다. 종교, 철학, 과학, 예술, 상업, 산업, 및 자선행위는 모두가 신성이 그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인간에게) 하강하는 채널이다. 우리 인간은 이 다양한 형태의 활동에 관련된 능력과 미덕을 쌓음으로써 인간성이 신성으로 고양된다.
신지는 신의 지혜를 의미한다. 그것은 신 또는 우주심(宇宙心, Universal Mind)의 모든 행동 양식과 관계가 있다. 우리가 갖고 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은 “진화라는 신의 계획”을 이해함으로써 어느 정도 찾아진다. 이는 모든 혼이 유산으로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나 우리 각자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애정을 배울 때에만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신의 지혜의 활동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지혜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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