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 대하여

 

 


  그러자 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말했다.

"우리에게 아이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말했다.

너희의 아이는 너희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생명의 아들딸이니.

저들은 너희를 거쳐서 왔을 뿐 너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또 저들이 너희와 함께 있기는 하나 너희의 소유는 아니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저들은 저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너희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줄려고 하지 말라. 저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너희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너희가 아이들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너희같이 만들려 애쓰진 말라.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고,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너희는 활이요, 그 활에서 너희의  아이들은 살아있는 화살처럼 날아간다.

그래서  활쏘는 이가 무한의 길에 놓인 과녁을 겨누고, 그 화살이 빠르고 멀리 나가도록 온 힘을 다하여 너희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너희는 활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듯이 또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기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필적할 만한 작품을 찾기는 어렵다.

이 작품에는 일정한 내적인 흐름이 있다.

처음에 그는 사랑을 이야기했고,

그 다음에는 결혼으로, 결혼에서 아이들로
- 이것이 바로 삶의 강물이 흐르는 방식이다. 


  이 차이를 느낀 적이 있는가?

여자는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며 세속적이다. 여자는 땅에뿌리내리고 있다.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공허한 말장난이나 수수께끼가 아니다.

심지어  수세기 동안 여자들에게는 그러한 것을  질문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이 온통 쓰레기로 가득 차 있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매순간 부딪쳐야만 하는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칼릴 지브란은 추상적인 철학자가 아니다.

추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삶의 진정한 문제들로부터 도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겁쟁이들이지 철학자가 아니다. 그런데 이 겁쟁이들이 세계의 사상을 주름잡고 있으니...

이 질문들 모두가 여자에게서 나왔다. 거기 겁쟁이들도 있었다.

배운 사람들, 성직자들, 철학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물었을 때, 알무스타파는 그들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자가 바보 천치라면 그 어리석은 질문에 일일이 대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너희의 아이는 너희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는 물건이 아니다. 그대는 아이를 소유할 수 없다.

"이 애는 '나의' 아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대의 무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생명은 결코 누구에게 소유 당할 수 없다.

생명을 그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는 있으나, 주먹을  쥐는 순간 생명은 빠져나간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아이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아이들을 파괴해 왔다.

아이를 소유할 수 있는가?  그대는 생명을 창조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가?

생명은 어디까지나 풍요로운  존재의  선물이다. 그대가 그 생명이 탄생하는 도구로 선택된 것에 감사하라.

아이는 그대를 통하여 세상에  나왔지만,  그렇다고 그대에게 소속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대는 단지 통로였을 뿐이다. 만일  부모들이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면 세상은 완전히 다른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아이들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산과 숲과 들판을 통하여 흐르는 영원한 생명이다.

그대를 통하여 세상에 나온 아이는 그대 이전에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세상에 왔었다.

아이의  과거와 미래에는 영원히 놓여 있다. 아이는 여러 집, 여러 도시, 어려 낯선 장소에서 살았었다.

그 수백만의  통로들 중에서 그대는 하나의 통로일 뿐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아이를 존경하라.

지금까지 세상의  어떤 사회도 아이들을 존경하지 않았다.

나이 먹고, 늙고, 거의 죽은 사람들만을 존경해  왔다.
모두가 무덤에만 존경을 표시하지, 요람에는 존경을 보내지 않는다.

아이는 가장 순수한, 전혀 물들지 않은 생명이다.

알무스타파의 말이 옳다. '아이들은  너희를 거쳐서 왔을 뿐 너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태초로부터 나왔다.


  또 저들이 너희와 함께 있기는 하나 너희의 소유는 아니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세상에선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다.

그대의 부모를   억하는가?

그들은 그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었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사랑을 이용하여 그대에게 자신들의 종교, 자신들의 정치 이념, 자신들의 국적과 사상을  강요하였는가?

그렇지 않으면 인류가  왜 분열되었는가?

누가 죄인인가? 

왜 이토록 많은 국가가 생겨났는가?

왜 이토록 많은 종교가 난립하는가?


  인류는 하나다. 진리도 하나다. 하지만 사람들의 자신의 본래 얼굴을 찾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가면이 씌워지고, 사람들은 이 가면이 자신의 진짜 얼굴인 것으로  착각한 채 평생을 산다.

그대는  자신이 기독교인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그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던 적이 없다.

그리스도, 고타마 붓다, 마하비라, 노자, 짜라투스타라, 이들 중 누구와 함께 있는 것이 좋은지 선택할 기회도, 선택권도 그대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대의 종교는 그대를 묶는 밧줄이다.

그대의 감옥이다.

그대의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이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사슬이다.

그것들은 육신이 아니라 그대의 영혼을 묶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데올로기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을 팔아 버린 사람이다. 

모든 나라의 모든 성직자들이 이제는 노예제도가 없어졌다고 주장하지만, 그래도 그대는 노예이다.

그 말은 진실이 아니다. 그렇다.

노예제도는  형태를 달리했을 뿐이다. 더 위험해졌다.
그대가 나에게 수갑을 채운다 해도 내 정신은 자유롭다.

내  발에 사슬을 채워도 내 영혼은 자유롭다.

내 몸을 못쓰게 만들어도, 내 영혼은  자유롭다. 

하지만 힌두교와 불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로 그대의 마음을 물들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사슬로 그대의 정신을 묶는 것이다.

이것이 더 큰 죄다. 지금까지의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그 책임이 있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저들은 저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저들의 생각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고, 아직은 씨앗의 형태이다.

저들은 아직 가능성의 상태이다.

하지만 저들에게  자유와 사랑을 주면 저들의 생각은  구체화되고, 실체화된다.

그대 자신의 생각이 실체화되었을 때 그대의 존재는  너무나 큰 기쁨과 충족감 과 축복을 느낀다.

그대는 꿈속에서도 그러한 것을 체험할 수 없으며, 그것에 대한 어떤  관념도 가질 수 없다.

그것은 그대의 사고 능력을 초월해 있다. 그것은 그대의 가슴에서  자라고, 그대의 가슴에서 꽃피어나기 때문이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좋은  의도 아래에서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죽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영혼을 죽여 버렸다.
  저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너희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그대는 과거에 속해 있고, 그대의 시대는 끝났다.

그러니 그대의 죽은 경전들을 아이들에게 짐 지우지 말라.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의 경전을 가질 것이고, 저들 자신의 성자들을 가질 것이다.

저들 자신의 부처, 저들 자신의  그리스도를 가질 것이다.

왜 저들이 과거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가.

그들의 미래는 활짝 열려 있다.


  그대 만일 그대의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그대의 손길을 거두라.

저들이 강해지도록 사상을 주입시키지 말라.

그대의 사상은 저들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대의 사상 때문에  저들은 자신의 길을 잃을 것이다. 그대는 저들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지켜보고, 저들의 뚜렷한 통찰력을 보라.   나이를 먹을수록 그대의 눈에는 먼지가 낀다.

그리고 모두가 그대에게 충고를 한다. 충고란 세상에서 누구나 주면서 아무도 받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대에게 의존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오염시킨다.

알무스타파가 옳다.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저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그대는 어제에  살고 저들은 내일에 산다.

그대가 줄 수 있는 한 많은 사랑을 주어라. 현재는 만남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이별의 장소이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이  현재에서 그대들은 헤어지기 시작한다.

나날이  그대와 그대의 아이들의 간격은 더욱더 커진다.


  그대 만일 과거로부터 자유롭다면, 그대는 더 높은  의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나  붓다보다 더 높은 의식을. 우리는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은 별들을 향해  높이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자명한 진리를 이해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과거는 그대의 인생에 가장 큰 장벽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생각은 이미 시대에 뒤진 것이다.

아이들은 저들 자신의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나무들이 훨씬 잘 안다.

가을이면 낡은 이파리들은 떨어져 흙  속으로 사라져서는, 더 푸르고, 더  젊고, 더 싱싱한 새 이파리가 자라날 자리를 준다.

만일 낡은 이파리들이 계속  나무에 매달려 있기를 고집한다면, 새 이파리들이 자라날 공간이, 가능성이 없게 된다.


  너희가 아이들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너희같이 만들려 애쓰진  말라.
여기서 칼릴 지브란은 대단히 심오한 통찰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이를 그대의 복사본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아이를  죽이는 일이다.

아이들은 자기 본래의 얼굴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본래의 얼굴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본래의 얼굴에는 신성한 어떤 것이 있다.

본래의  얼굴은 위엄을 가지고 있다. 복사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고,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너희는 활이요, 그 활에서 너희의 아이들은 살아있는 화살처럼 날아간다. 

어디를 행해 날아가는가? 미지의  알 수 없는 세계를 행해 날아간다.

저들을 방해하지 말라.  저들에게 힘을 주라. 저들에게 사랑을  주라.
그래서 저들이 가장 먼 별까지 닿을 수 있도록 하라.
  그래서 활쏘는 이가 무한의 길에  놓인 과녁을 겨누고, 그 화살이  빠르고 멀리 나가도록 온 힘을 다하여 너희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존재계는 그대가 그대의 아이들 앞에서 활처럼 구부러지기를 바란다.

저들은 멀리 여행을 떠나야 하고, 그대는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활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대의 아이가 그대로부터  떠나갈 때, 그대의 아이가 자신의 권리에 따라 한 개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할 때 그대는 기뻐하라.

그가 순종적인 바보가 되지 않았음을 감사히 여기라.

바보가 아니면 아무도  순종하지 않는다. 지성은 언제나 반역을 꾀한다.

그대가 낳은 아이가 반역의 정신을 가진 것을 기뻐하고, 축복해 주라. 이것이 그대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그것을 불안해한다. 너희는 활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듯이  또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기에. 존재계는 그대들 둘 다 사랑한다.

그대들은 같은  존재계의 아이들이다. 단지 그대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화살들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저들을 축복하라. 알겠는가?

 

아이들에 대하여 -

오쇼 라즈니쉬가 강독한 칼릴지브란의 "예언자" 를

류시화 시인이 옮긴"또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 에서 발췌

2008. 5. 26 - 기쁨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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