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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에 따르면 종교(宗敎)란 으뜸가는 가르침이란 뜻이다.
그런데 큰 가르침이란 두가지를 축으로 삼는다.
하나는 낯선 삶과의 마주침, 또 다른 하나는 존재에 대한 위대한 긍정.
낯설다는 것은 지금 나의 동일성을 깨는 타자들을 의미한다.
그건 구체적인 대상일 수도 있고, 사건일 수도 있고, 또 시간의 흐름일 수도 있다.
그것들과의 마주침을 통해 현재의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될 때,
그 때 비로소 향연이 시작된다.
차이가 곧 생명력이다.
그래서 차이 속으로 들어가야만 비로소 존재에 대한 긍정이 가능해진다.
차이가 기존 표상의 낡은 틀을 깨는 것이라면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우주적 연기 조건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곧 깨달음(깨다/도달하다)이다.
그리고 그속에서만이 자기 자신의 존재성을 온전히 긍정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
너무 고매한가?
하지만 그 첫 스텝은 아주 단순하다.
타자와의 마주침.
고미숙의 '동의보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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