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天符經)


一始無始一 析三極無盡本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一積十鉅 無匱化三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大三合六 生七八九
運三四 成環五七


一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太陽昻明 人中天地一
一終無終一




주해(註解)


一始無始一 析三極無盡本


‘하나’에서 우주만물이 비롯되지만 시작이 없는 ‘하나’이며, 그 ‘하나’에서 천 지 인 삼극(三極)이 갈라져 나오며 다함이 없는 근본(根本)이 ‘하나’이다.


* 하나 : 一(하나)의 본질과 무한한 창조성에 대한 표현
 하나에서 만유(萬有)가 비롯되니 하도 신령스러워 ‘하나’님이라 부른다.


* 하나는 하늘, 천주(天主) (옴(AUM), 브라흐마(Brahma), Atman, 알파와 오메가, 알라(ALLAH), 일신(一神), 한울, 한얼), 불(佛), 도(道), 태극(太極), 무극(無極), 삼신(三神), 참나, 순수의식, 우주의식, 전체의식, 일심(一心), 혼원일기(混元一氣), 지기(至氣), 진리(眞理), 진여(眞如), 불멸(不滅) 등으로 다양하게 명명된다.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그 이름이 실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명명이 있기 전부터 이미 그것은 사실로 존재해온 것이다. 하나는 궁극적 실재이므로 생멸(生滅)하지 않으며 만유를 생멸케 한다.

비가 대지를 고루 적시고, 태양이 사해(四海)를 두루 비추며, 달빛이 천강을 고루 물들이는 것과 같은 만물에 편재해 있는 ‘하나’는 본래 ‘무명(無名)’이다. 그 이름으로 실상을 죽이는 것은 우상숭배에 빠지는 일이다. 


* 삼극(三極) :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의 세가지 측면 즉, 천지인(天地人),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 법신(法身) 화신(化身) 응신(應身), 신(神) 정(精) 기(氣), 브라마 비슈누 시바.


하늘의 기틀과 마음의 기틀, 땅의 형상과 몸의 형상, 그리고 사물의 주재함과 기(氣)의 주재함이 모두 혼원일기인 ‘하나’의 이치(理致)와 조화(造化) 작용이므로 하나와 우주만물은 분리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만물에 내재하는 ‘참자아(神性)’의 동질성을 깨달은 사람은 우주의 조화 기운과 하나가 됨으로써 유일자(오직 나, 참나)와 한 호흡 속에 있게 된다.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은 하늘마음이 곧 사람마음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늘이 사람을 떠나 따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이치를 통해 드러낸 것으로, 거울이 모든 형상을 받아들이고 바다가 모든 강줄기를 받아들이듯이, 일심(一心)은 만물만상을 포용한다. 우리들 자신의 깊은 의식이 하늘로 통하는 문이다. 의식의 근원에 이르게 되면 하나의 진리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일심(一心)의 나타남이다.
언젠가 ‘존재의 집’에 이르게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소를 타고 소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우리의 본신인 신을 찾아 천지사방을 헤매었다는 것을 !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一積十鉅 無匱化三


하늘의 본체가 첫 번째 열리고, 땅의 본체가 두 번째로 열리고, 인물의 본체가 세 번째로 생겨나는 것이라.


‘하나’가 쌓여 크게 열(十)을 이루지만 다시 다함이 없이 천·지·인 삼극(三極)으로 화하게 되는 도다.


해설)
‘하나(一)’의 묘리(妙理)의 작용으로 천지가 열리고 인물이 생겨나는 무위(無爲)의 천지창조(天地創造)과정을 일(一), 이(二), 삼(三)의 순서로 나타낸 것이다.

‘하나(一)’는 만유가 비롯되는 현묘(玄妙)한 문(問)이요, 천변만화(千變萬化)가 작용하는 생멸(生滅)의 문이며, 만물만상이 하나가 되는 진여(眞如)의 문이다. ‘하나(一)’의 묘리(妙理)의 작용으로 우주만물이 생장·분열하고 수렴·통일되지만 그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생장·분열하는 천·지·인 삼극(三極)의 천변만화의 작용이 있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과정은 다함이 없이 순환 반복 되는 것이라 하여 ‘일적십거 무궤화삼(一積十鉅 無匱化三)’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一)’가 종자라면, 우주만물(三)은 그 나무이고, 열(十)은 그 열매다. 종자인 ‘하나(一)’와 그 나무인 우주만물(三)은 둘이 아니며, 종자인 ‘하나(一)’와 그 열매인 열(十) 또한 둘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一)’와 셋(三)과 열(十)은 종자와 나무와 열매의 관계로 모두 하나이다.
 이는 마치 움직임이 극(極)에 달하면 고요해지고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움직이는 태극(太極)과도 같이, ‘하나(一)’가 묘하게 피어나 생장·분열하여 열매(十)를 맺게 되지만 그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열매(十)는 다시 종자인 ‘하나(一)’가 되고 그 ‘하나(一)’에서 천·지·인 삼극(三極)이 갈라져 나오는 과정이 다함이 없이 순환 반복되는 것이다.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


 하늘에도 음양이 있고, 땅에도 음양이 있으며, 사람에게도 음양이 있어 음양 양극 간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으로 천지 운행이 이루어지고 운주만물이 생장·변화하는 도다.


해설)
 ‘천일 지일 인일’이 ‘하나(一)’의 본체를 나타낸 것이라면  ‘하나(一)’가 만물(三)을 생성하는 과정은 음과 양, 양극간의 상호 작용으로 천지 운행이 이루어짐으로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작용 속에도 ‘하나(一)’의 진성(眞性)은 그대로 존재하므로 그 체가 둘이 아닌 즉 자생자화(自生自化)하는 본체로서의 작용인 것이다. 즉, 하나와 음양오행과 만물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천부경의 천·지·인 삼신은 불교의 법신 화신 보신, 동학의 내유신령 외유기화 각지불이와 마찬가지로 자성의 세 측면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자성의 세 측면은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신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삼위일체로서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이치에 입각해 있으며, ‘천일 지일 인일’ ·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 ‘인중천지일’은 천지인 삼신일체(三神一切)를 의미한다.


* 내유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 각지불이(各知不移) : 안으로 신령이 있고 밖으로 기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기 알아서 옮기지 아니한다는 뜻은 인간의 신성(神性)과 생명의 유기성 및 상호 관통을 깨달아 순천(順天)의 삶을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 “본체계와 현상계의 상호 관통을 깨닫지 못하면 죽음에서 죽음으로 떠돌게 된다.”
 -까타 우파니샤드
 "What is here is also there, and what is there is also here, Who sees the many and not the onE, wanders on from death to death."
 


大三合六 生七八九


대삼(大三), 즉 하늘의 음양과 땅의 음양과 사람의 음양이 합하여 육(六)이 되고, 칠(七), 팔(八), 구(九)가 생겨나는 것이다.


여기서 육(六)은 천지인 기본수인 일, 이, 삼을 합한 수이기도 하며, 본체로서의 천지인 셋과 작용으로서의 천지인 셋을 합한 수이기도 하다.


해설)
육은 대삼의 묘합(妙合)이자 ‘하나(一)’의 체상(體象)을 나타낸 것으로 ‘하나(一)’의 진성(眞性)은 이들 음양(二) 속에도 그대로 보존된다. 말하자면 ‘하나(一)’는 본체계와 현상계를 관통하는 근원적인 일자(一者)로서 우주만물에 편재해 있는 보편자(普遍者)이다.


‘천이 지이 인이’를 합한 육에 천·지·인 기본수인 일, 이, 삼을 더하면 칠, 팔, 구가 생겨나는 것이니 이는 천지인 혼원일기인 ‘하나(一)’가 생명의 물레를 돌리는 이 우주의 가없는 파노라마를 천지 포태(胞胎)의 이치와 기운을 담은 이수(理數)로 나타낸 것이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다스리는 하늘의 주재신으로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두칠성(北斗七星)과 인간의 일곱가지 감정인 칠정(七情)과 망자(亡子)가 삼악도(三惡道)에 들지 않고 좀더 낳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비는 기도의식이 49재 즉 칠칠재(七七齋)의 7이라는 숫자,
 우주섭리를 함축하고 있는 팔괘(八卦)와 여덟 절후(節侯)의 팔절기(八節氣)의 8이라는 숫자,
 하늘의 구궁(九宮 : 팔괘의 방위와 가운데 방위를 합한 것)과 인체의 구규(九竅 : 눈, 코, 귀, 입, 요도, 항문의 아홉 구멍)와 중국 하나라 우왕이 요순(堯舜) 이래의 정치대법을 9개 조항으로 집대성한 홍범구주(洪範九疇)의 9라는 숫자,
 그리고 칠팔구를 합한 24절기의 24라는 숫자 -- 이 숫자들의 순열 조합은 우주 섭리가 써내려 가는 생명의 대 서사시(敍事詩)요, 천지인 혼원일기가 연주하는 생명의 교향곡이다.


요약자 주)
 ‘일(一) 이(二) 삼(三) 사(四) 오(五)’는 우주 생성의 본체의 원리인 선천(先天)수이자 형이상학(形而上學)적인 수(數)이고, ‘육(六) 칠(七) 팔(八) 구(九)’는 선천 원리를 바탕으로 생명이 생성(生成) 성장(成長)하여 가는 현상세계의 후천수(後天數)이자 형이하학(形而下學)적인 형상(形象)의 수(數)이다. 육(六)은 육면체(六面體)로 표현되는 생명체의 모습이 이 형성되는 수(數)이고 칠(七), 팔(八), 구(九)로 성장(成長)되어가는 수(數)의 표현이다.






運三四 成環五七


 천·지·인 셋(三)이 네(四)단계 - ‘하나(一)’, ‘천일 지일 인일’, ‘천이 지이 인이’,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 를 운행하면서 오행(五行)이 생겨나고 음양오행(七)이 만물을 낳는 과정이 끝없이 순환 반복되는 원궤(環)을 이루는 것이다.


해설)
 삼(三)과 사(四)의 수리(數理)를 운용(運用)하여 오(五)와 칠(七)의 순환 고리를 이루는 바가 표징(標徵)하는 인간세계의 윤회란 오욕칠정이 낳은 우리 내부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다함이 없이 카르마(karma, 業)의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궁극적 실재인 ‘하나(一)’와 우주만물이, 본체와 작용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리하여 이 우주가 ‘한생명’임을 깨닫게 되면, 윤회의 수레바퀴는 멈추게 될 것이다.


 삼(三)과 사(四)의 수리(數理)를 운용(運用)하여 오(五)와 칠(七)의 순환 고리를 이루는 것을 도형으로 나타낸 것이 원방각(圓方角:○ □△)이다. 천지인(天地人)을 함축하고 있는 천원(天圓:○ )·지방(地方:□)·인각(人角:△)의 원리는 삼사(三四) 즉 삼각△과 사각□을 운용하여 오칠의 순환 고리 원(圓:○ )을 이루어 원방각이 삼위일체가 되는 삼일도(三一圖)를 형성하게 된다. 원방각의 삼일도는 5개 접점과 7개면으로 이루어진 까닭에 오칠의 순환 고리 원을 이룬다고 한 것이다.








  생명은 전체적인 것-전체와 분리된 개체는 그 어떠한 의미에서도 진리가 아니다. 자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개체의 존재성은 우주적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존재성은 관계성이기 때문이다. 오(五)와 칠(七)이 이루는 생명의 순환 고리는 생명 현상 그 자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이는 포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사(生死)란 우주의 숨결이다. 생명은 결코 죽지 않는다. 삼라만상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변화할 뿐이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이나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 모두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명의 순환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초목을 키우고 초목은 다시 인간에게 산소와 양분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생명의 흐름은 상호 의존(interdependence)·상호 전화(interchange)·상호 관통(interpenetration)하는 궤를 이루며 영원히 이어진다.


 지전(地轉)에서는 음양 양극 간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으로 천지 운행이 이루어지고 음양오행이 만물을 낳는 과정이  끝없이 순환 반복되는 ‘하나’의 이치와 기운의 조화(造化)작용을 보여준다.
 천부경에서 천지 포태의 이치와 기운을 일(一)부터 십(十)까지의 숫자로 풀이한 것은 진리가 언설의 경계를 넘어서 있는 까닭이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나룻배가 필요하나 언덕에 오르기 위해서는 배를 버려야 하듯, 진리의 언덕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 숫자들마저도 버려야 한다.



一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


 하나(一)’의 묘리(妙理)의 작용으로 삼라만상이 오고 가며 그 쓰임(用)은 무수히 변하지만 근본은 변함이 없도다.


 ‘하나(一)’에서 삼라만상이 화생(化生)하는 것을 ‘오다(來)’라고 하고, 궁극에는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다(往)’라고 한 것으로, ‘만왕만래’는 그러한 과정이 수없이 반복됨을 의미한다.
용변은 ‘하나(一)’의 작용적 측면을 나타낸 것이고 부동본은 다함이 없는 창조성을 지닌 ‘하나(一)’의 본체적 측면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본체(本體)와 작용(作用)의 관계는 일(一)과 다(多), 이(理)와 사(事), 정(靜)과 동(動), 진(眞)과 속(俗), 정(淨)과 염(染), 공(空)과 색(色)이라는 불가분의 관계로 분석될 수 있다.


해설)
 우주만물이 다 지기(至氣)인 ‘하나(一)’의 화현(化現)이고, 우주만물의 생성·변화·소멸 자체가 모두 ‘하나(一)’의 조화의 자취이니, ‘하나(一)’의 묘리(妙理)의 작용으로 삼라만상이 오고 간다고 한 것이다.


 ‘하나(一)’는 천지만물의 근원으로서 무한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하나의 달(月)이 수천 갈래 시냇물에 비치지만, 허공에 떠 있는 달은 변함도 다함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밤이 다하면 물속에 있는 수천 개 ‘달’은 근원인 하나의 ‘달’에 의해 거두어 진다. 무지(無知)의 바람이 고요해지면 일체의 현상은 ‘하나(一)’의 본질 속에 흡수되기 마련인 것이다.  본체계와 현상계, ‘하나(一)’와 만물의 관계는 보이지 않는 실체와 보이는 그림자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은 일체의 생명 현상이 자기근원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주체-객체 이분법으로 무리하게 설명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스스로 생성되고 스스로 변화하여 스스로 돌아가는 것인데, 누가 누구를 창조한단 말인가! 거울에 비친 형상과 거울을 분리시킬 수 없고, 천강(千江)에 비친 달그림자와 달을 분리시킬 수 없듯이, 우주만물과 혼원일기인 ‘하나(一)’ 즉, 유일신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풀 한포기, 물방울 하나까지도 모두 유일신 ‘하나(一)’의 조화 작용의 나타남인 까닭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실체가 곧 그림자요 그림자가 곧 실체이다. 생사(生死)를 버리고 열반(涅槃)을 구하는 것은 마치 실체를 버리고 그림자를 구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색신(色身)을 버리고 법신(法身)을 구하는 것은 물을 버리고 얼음을 구하는 것과 같다. 생사가 곧 열반이요, 색신이 곧 법신이다. 그것은 티끌 속에서 티끌 없는 곳으로 가는 경지다. 말하자면 본체와 작용의 관계다.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에서는 “보신(報身)과 화신(化身)은 진(眞)이 아니며, 법신(法身)만이 청정하여 끝이 없다”라고 하고 있다. 이는 물속의 달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허공에 뜬 달은 항상 교교(皎皎)히 빛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 창세기 28장 10-12, 15 :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자신의 깊은 의식이 바로 하늘로 통하는 문이다. 의식의 근원에 이르게 되면 하나의 진리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이 바로 일심(一心)의 나타남이다.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하나님의 사자 또한 영적 차원에서 물적 차원으로, 물적 차원에서 영적차원으로 자유로운 내왕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본체계에서 현상계로, 현상계에서 다시 본체계로의 이동을 표징(標徵)하는 것이다. 
 


本心本太陽昻明 人中天地一


인간의 근본 마음자리는 우주의 근본인 태양과도 같이 광명한 것이어서, 이렇게 환하게 마음을 밝히면 천·지·인 삼신일체의 천도가 인간 존재 속에 구현 되는 것이다.


 본심은 소우주인 인간의 참본성, 즉 근본 마음자리를 일컫는 것이고 태양은 대우주의 근본인 태양을 일컫는 것이니, 본심본태양은 인간의 근본 마음자리가 우주의 근본인 태양과도 같이 광명하다는 뜻이다. 인중천지일은 사람가운데 천지가 하나가 된다. 이는 내재적 본성인 신성(하나)을 깨달음으로써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체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실현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해설)
 인간의 자기실현이란 “내가 나 된 것일 뿐 다른 것이 아니다.” -동경대전(東經大全) 我爲我而非他 따라서 이 세상에서 새로이 이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인간 본래의 자성(自性)을 회복하는 일만이 있을 뿐이다. ‘참나’가 바로 불생불멸의 영원한  ‘하나(一)’이며, 이는 하나인 마음(一心)으로 우주적 본성을 일컬음이다. 


 그런 까닭에 『영부주문(靈符呪文)』 에서는 “마음이란 것은 내게 있는 본연의 하늘이니 천지만물이 본래 한 마음이라(心者 在我之本然天也 天地萬物 本來一心)”고 한 것이다.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면 사람이 하늘을 모시고 있음(侍天)을 저절로 알게 되는 법. 이는 평등성지(平等性智)의 나타남이다.


* 『金剛三昧經論』에서는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면 네 가지 지혜가 원만해진다고 말한다.
 대원경지(大圓鏡智) : 그 땅은 청정하기가 깨끗한 유리와 같다.
 평등성지(平等性智) : 그 성(性)이 항상 평등하기가 저 대지(大地)와 같다.
 묘관찰지(妙觀察智) : 깨닫고 묘하게 관찰함이 지혜의 햇빛과 같다.
 성소작지(成所作智) : 이익을 이루어 근본을 얻음이 대법우(大法雨)와 같다.


 저 푸른 창공도 저 까마득한 허공도 아닌 하나인 마음 즉 ‘하나(一)’를 공경함으로써 불생불멸의 참자아 즉 자신의 내재적 본성인 신성(神性)을 깨닫게 될 것이요, 일체의 우주만물이 다 내 동포라는 전체의식(우주의식, 순수의식)에 이를 수 있을 것이며, 실로 ‘하나에 대한 공경’이야말로 모든 진리의 중추이다.


 인간이 영적(靈的)으로 확장될수록 사랑은 그만큼 전체적이 된다. 우주만물에 대한 차별 없는 공경과 사랑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주 만물에 내재한 -동시에 초월한- ‘하나’인 참자아를 깨달음으로서 이다.


 신(神)은 만유에 내재해 있는 신성(神性)인 동시에 만유를 생성 변화시키는 지기(至氣)로서 일체의 우주만물을 관통한다. 그것은 종교적인 낡은 교의나 철학적 사변이나 언어적 미망(迷妄)을 떠나 있으며, 에고(ego, 個我)가 만들어 낸 일체의 장벽을 해체한다.
‘인중천지일’은 이성과 신성의 통합을 의미한다.
*경천(敬天) : 우주만물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원천인 바로 그 하나인 마음을 공경함.



一終無終一


‘하나(一)’에서 우주만물이 비롯되고 다시 ‘하나(一)’로 돌아가지만 끝이 없는 영원한 ‘하나(一)’로다.


우주만물의 근원인 그 하나(一)는 ‘하나(一)’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이전부터 이미 사실로서 존재해 온 까닭에 시작이 없으며 따라서 ‘하나(一)’로 돌아가지만 끝이 없는 ‘하나(一)’라는 뜻이다.


해설)
 끝이 없다는 것은 곧 시작이 없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영원한 ‘하나(一)’로 천부경은 끝난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인 ‘하나(一)’는 진여(眞如)와 생멸(生滅), 진제(眞諦)와 속제(俗諦), 본체(本體)와 작용(作用)의 이분법이 완전히 폐기된 경계인 까닭에 시작도 끝도 없으며, 가지도 오지도 않는 것이다.


 어느 화상(和尙)이 선지식(善知識)에게 물었다.
“가지도 오지도 않는 것은?”
선지식이 대답했다.
“내가 너하고 같이 다니는 것이다.”


참자아 속에는 그 어떤 차별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전체성만이 물결칠 뿐이다. 모든 존재 속에 내재하는, 동시에 초월하는 이 ‘하나(一)’인 참자아를 깨닫게 되면 그 어떤 환영(maya)이나 슬픔도 없으며 죽음의 아가리로부터 벗어나 불멸에 이르게 된다.


 - 찬도가 우파니샤드 : There is a Spirit witch is pure and which is beyond old age and death; and beyond hunger and thirst and sorrow. This is Atman. the Spirit in man.


 가을이 되면 나무가 수기(水氣)를 뿌리로 돌리듯, 일체의 생명은 본래의 뿌리로 돌아감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歸一心源) 은 개인적 차원의 원시반본이요, 우리 민족의 원형을 함유하고 있는 상고사 복원과 국조이신 환인 환웅 환검 숭배는 민족적 차원의 원시반본이며, 천지부모를 섬기는 것은 지구공동체적 차원의 원시반본이고 우주의 봄 여름인 선천 5만년이 다하고 우주의 가을이 되면 우주의 섭리에 따라 후천개벽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우주적 차원의 원시반본으로 그 이치는 모두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주 가을로의 초입(初入)에서 천부경이 세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도 후천의 세 세상을 열기 위한 원시반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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