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웃음은 뇌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의해서 촉발된다.

좌뇌는 감각이 받아들이는 괴상하거나 역설적인 정보를 소화하지 못한다.

(좌뇌는 계산하고 추론적인 논리적 기능을 담당한다.) 허를 찔린 좌뇌는

즉시 고장 상태에 빠지며, 받아들인 이질적인 정보를 우뇌에 보낸다.

(우뇌는 직관적 예술적 사고를 담당한다).

이 정체불명의 소포를 받게 된 우뇌는 순간적인 전류를 보내러 좌뇌의

활동을 정지시키는 한편, 그 사이에 자신은 이정보에 대해 개인적이고도

예술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평소에는 항상 깨어 있는 좌뇌의 순간적인 활동정지는 즉시 대뇌의 이완과

엔도르핀(이 호르몬은 사랑의 행위를 할때도 나온다)의 분비를 초래한다.

역설적인 정보가 좌뇌에게 거북하게 느껴질수록 우뇌는 더 강한 전류를

보내게 되고, 엔도르핀의 분비량은 더욱 많아진다.

 

동시에 이질적인 정보가 야기하는 긴장상태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메카니즘으로서, 온몸이 몸의 긴장완화에 참여한다. 허파는 공기를

체외로 세차게 배출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운음의  <신체적>과정의 시작

이라 할 수 있다. 이어 광대뼈 근육 및 흉곽과 복부의 단속적인 움직임으로

몸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몸의 더 깊은 곳에서는 심장근육과 내장이

경련을 일으킴으로써 일종의 체내메세지를 발출하여 복부 전체의 긴장을

푼다. 이 이완이 심하면 때로는 괄약근까지 풀어지게 된다.

 

요약하자면, 우리의 정신은 역설적 혹은 이질적인 성격의 뜻밖의 정보를

소화할 수 없으므로 스스로의 활동을 정지시킨다. 즉, 고장상태로 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고는 가장 기묘한 쾌락의 원천이 된다. 더 많이

웃을수록 우리의 건강은 더 좋아진다.이 활동은 노화를 늦추고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준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6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 신"  6권에서 옮김 

 

 

 

 

인간은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의 일부이며,시간과 공간의 한계속에 갇혀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생각과 감각이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분리된 것이라고 느끼는데,

사실 이것은 우리의 의식이 일으킨 일종의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환상은 우리에게는 하나의 감옥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개인적 욕망만을 추구하며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론 이 감옥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 공감의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모든 생명체와 찬연한 자연 전체를 끌어안아야 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신" - 제5권 서두에서 옮김

 

.

.

.

 

 

 

 아침 강가에서~

2009. 7. 7

 

 

 

 

 

 

 

 

 

 

 

 

 

 

 

 

 

 

 

 

 

 

 

 

 

 

 

 

 

 

 

 

 

 

 

 

 

 

 

 

 

 

 

 

 

 

 

 

 

 

 

 

 

 

 

 

'하나됨 - 지금여기 >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릴지브란과 예언자에 대하여 .....오쇼  (0) 2010.10.29
웃음  (0) 2009.07.18
솔로몬의 비밀  (0) 2009.03.11
헤라클레이토스 강론 모음  (0) 2009.03.06
거울  (0) 2008.12.11

 

발이 빠른 사람들은 사라진 솔로몬의 보물을 찾아 나섰다.

머리가 빠른 사람들은 잊혀진 솔로몬의 지헤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아무도, 어느 것도 찾지 못했다.

입이 빠른 사람들이 퍼트린 소문만 자자했다.

'하나됨 - 지금여기 >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웃음  (0) 2009.07.18
인간에 대한 단상 - 아인슈타인  (0) 2009.07.07
헤라클레이토스 강론 모음  (0) 2009.03.06
거울  (0) 2008.12.11
탄트라 - 1,2권 방편들  (0) 2008.08.27

헤라클레이토스 강론

서양의 붓다


오쇼라즈니쉬 강의 / 손민규 옮김


Much learning does not teach understand.

You could not discover the limits of the soul even if you

traveled every road to do so such is the death of the meaning.


많은 학식도 이해를 가르쳐 주지는 못하네,

모든 길을 여행해 보아도

영혼의 한계를 발견할 수는 없으리니,

그 의미는 너무나 깊고 깊어라.

 

하나, 숨은 조화 - The hidden harmony


드러난 것보다 숨은 조화가 훨씬 낫다.


대립은 화합을 가져오고

불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생겨난다.


만물은 변화 속에서 안식을 발견 하나니

자신과 불화를 이루는 것이

어떻게 자신과 일치되는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수금(竪琴)과 활의 경우처럼

구부러진 등에도 조화는 있다.


활의 이름은 삶이지만

그 일은 죽음이다.


(사랑은 계속되는 허니문의 관계를 말한다. 허니문이 끝나고 모든 것이 안정되면 그것은 이미 죽은 사랑이다, 안정된 모든 것은 죽은 것이다. 삶은 안정이 없는 움직임을 통해 유지 된다. 안전한 것은 이미 무덤 속에 묻힌 것과 같다.)

 

둘, 잠들어 있는 사람들 - Fast asleep even while awake


인간은 잠들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깨어있는 동안에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의식하지 못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귀머거리와 같다

아무리 그들이 듣는다 해도.

그들에게는 이런 말이 어울린다.

“그들은 어디에 있건 그 자리에 있지 못한다네.”


잠든 것처럼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


깨어난 사람들은 공통된 하나의 세계관을 갖지만

잠자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사적인 세계를 갖는다.


깨어있을 때에는 무엇을 보든 죽음이고,

잠자고 있을 때에는 무엇을 보든 꿈이다.


(사랑을 통해 비상할 때, 그 사랑은 아름답다. 반면, 사랑을 통해 추락할 때 그 사랑은 더럽고 추하다. 사랑에 빠졌을 때 그대는 이 사랑이 독약이라는 것을 곧 깨달을 것이다. 그 사랑은 구속이 된다. 그대는 사랑의 올가미에 걸렸다. 자유가 파괴되고 날개가 잘렸다. 이제 그대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 사랑에 빠짐으로써 그대는 소유물이 된다. 그대는 상대방을 소유하는 동시에 상대방이 그대를 소유하도록 허용한다. 그대는 물건이 된다. 그리고 상대방을 물건으로 전락시키려고 애쓴다.)


예수는 말한다.  “죽은 자는 죽은 자들이 장사 지내게 하라.”

시간이 세상이라면 영원은 신이다. 수평적 차원이 세상이고 수직적 차원이 신이다.

“신이여 당신 뜻대로 하소서”

시간 속에서 죽어라. 그러면 영원 속에서 부활한다.

마음의 세계에서 죽어라. 그러면 의식의 세계에서 살아난다.

생각의 차원에서 죽어라. 그러면 각성의 차원에서 태어난다.

 

셋, 지혜는 하나다 - Wisdom is one and unique


이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들,

중용을 지키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중용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덕이다.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며,

사물의 본질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데

지혜가 있나니.


로고스가 아니라 내말에 귀를 기울여

만물이 하나임을 시인하는 것이 지혜다.


지혜는 하나다.

만물을 조종하는 지성,

만물을 통하여 그 지성을 아는 것이 지혜다.


지혜는 유일무이하다.

이 지혜는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라지 않는 동시에

또 그렇게 불리기를 바란다.

 

넷, 신은 낮인 동시에 밤이어라 - God is day and night


신은 낮인 동시에 밤이며,

겨울인 동시에 여름이다.

그는 전쟁인 동시에 평화이며,

풍족함인 동시에 결핍이다.


바닷물은 순수한 동시에 불결하다.

물고기에게는 마실 수 있으며 유익한 것이지만,

인간에게는 마실 수도 없고 치명적인 것이다.


낮과 밤의 본질은 하나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하나이며 똑같다.


잠자는 사람들도

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에

동참하고 협조한다.


원안에서 시작과 끝은 하나다.


신은 인격체가 아니다. 그럴 수가 없다. 이것이 하나의 문이 될 것이다. 특히 유태교인, 기독교인, 모하메드 교인들은 신을 인격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것이 문을 닫아 버린다. 신을 인격체로 보는 것은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다. 성경에서는 신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 인 것 같다. 인간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신을 창조했다. 그런데 인간은 제각기 다르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은 에너지이다. 신은 절대적인 각성이다. 신은 지복이며 환희다. 정의 될 수도 없고 한계도 없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영원히 존재한다. 신은 전체를 의미한다.


선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도의 길로 들어가기 전에 강은 강이고, 산은 산이다. 도의 길로 들어서면 강은 강이 아니고 산은 산이 아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달하면 다시 강은 강이고 산은 산이다”


인간이 곤경에 처한 것은 항상 선택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항상 균형을 잃고 있다. 모든 사회와 문명이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모든 것을 선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성 우월적인 사회, 전쟁 지향적인 사회를 만들었다. 여자는 완전히 무시당한다. 여자는 끼어들 여지조차 없다. 여자는 어둠, 평화, 침묵, 수동성, 자비다. 여자는 만족이지 욕망이 아니다. 반면 남자는 욕망이다. 남자는 흥분, 모험, 전쟁이다. 항상 어디론가 헤매고, 어딘가에 도달하 려 하고, 항상 무엇 인가 찾아다닌다. 남자는 방랑자이고 여자는 가정이다. 이 둘이 만날 때, 방랑자와 가정, 욕망과 만족, 능동성과 수동성이 만날 때 최고의 조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숨은 조화다.

 

 

다섯, 그 의미는 너무나 깊고 깊어라 - Such is the depth of its meaning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임의적인 추측을 만들지 말자.


많은 학식도 이해를 가르쳐 주지는 못하네.


금을 찾는 사람들은

깊이 땅을 파헤치지만

얻는 것은 거의 없으리라.


모든 길을 여행해 보아도

영혼의 한계를 발견할 수는 없으리니,

그 의미는 너무나 깊고 깊어라.


어떤 것에 전적인 관심을 쏟을 때, 그것이 진지함이다. 어떤 것을 수단으로 보고 관심을 기울일 때 그대는 교활하다. 그대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대가 관심을 갖는 것은 수단에 불과하다. 그대는 착취한다.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길을 이용한다. 그러나 어린아이에게는 길이 곧 목적지다. 종교적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디에 있건 그곳이 목적지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건 이 사람이 목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나의 삶 전체가 내게 집중되어 있다. 달리 갈 곳이 없다. 이 순간을 전체적으로 즐기고 누려야 한다.

이런 사람이 종교적인 사람이다. 그는 어디로 갈지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아침 산책을 즐길 뿐이다. 이것은 전혀 다른 현상이다. 직장에 출근할 때와 아침 산책을 나갈 때 같은 길을 걷는다고 하자. 길은 똑같다. 모든 것이 똑같다. 집도 똑같고 그대도 똑같다. 그대의 다리도 똑같다. 그러나 아침 산책을 나갈 때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종교적인 사람은 아침 산책을 하듯이 살아간다. 그리고 비종교적인 사람은 직장에 나가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는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세속적인 사람은 목적을 지향한다. 그 목적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세속덕인 것이든 신이든 그는 목적을 지향한다.

반면, 비세속적인 사람은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산다.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된다. 이때 지금 이 순간은 무한(無限)이 된다. 아무리 많은 길을 걸어도 무한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남는다. 이것이 아름다움이다. 만일 도달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만일 그대 자신을 알 수 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때 그대는 자기 자신에 대해 권태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권태는 결코 오지 않는다. 삶은 영원히 이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삶은 무한에서 다른 무한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이것을 명심하라. 마음만으로 듣지 말고 가슴 깊이 새겨라.

 

여섯, 여기에도 신은 있다 - Here, too, are the gods


몇 명의 방문객이 뜻하지 않게

헤라클레이토스를 찾아갔을 때

그는 불가에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여기에도 신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을 탐구했다.


시간은 장기를 두는 아이와 같으니,

왕권이 그의 것이니라.


광신은 신격화된 질병이다.



다시 아이가 될 수 있다면 그대는 모든 것을 이룬 것이다. 반면, 다시 아이가 될 수 없다면 그대는 모든 것을 놓친 것이다. 성자는 다시 태어난 어린아이다. 처음으로 태어난 아이는 진짜 아이가 아니다. 그는 어른으로 성장해야 한다. 두 번째 탄생이 진정한 탄생이다. 두 번째로 태어나는 사람은 스스로를 탄생시킨다. 이것이 변형이다. 그는 다시 아이가 되었다. 그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냥 살 뿐이다. 어떤 순간이 오건 그는 그 순간과 함께 움직인다. 그에게는 계획이 없다. 그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겉으로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진짜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신도 없고 악마도 없다. 아이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성자는 “신은 여름이며 겨울이다. 신은 평화이며 전쟁이다. 신은 악마이며 선이다.”라고 말한다. 성자에게는 모든 도덕률이 사라진다. 모든 구별이 사라진다. 만물이 성스럽고 모든 장소가 신성하다.


명심하라. 어떤 목적을 추구하면 삶 전체를 잃을 것이다. 삶에는 아무 목적도 없다. 삶은 목적 없는 놀이다. 삶은 아무 데로도 가지 않는다. 그저 삶 자체를 즐길 뿐이다.

이것은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의 마음은 수학적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삶의 목적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삶에는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다. 마음은 즉각 “삶에 아무 의미가 없다면 왜 사는가? 왜 자살하지 않는가?” 하고 반문한다. 보라 의미가 있으면 모든 것이 추해진다. 삶이 사업처럼 된다. 목적이 있으면 삶 전체가 시(詩)를 잃어버린다.

삶에 시가 존재하는 것은 이 삶에 아무 목적도 없기 때문이다.

 

 

일곱, 지혜로운 영혼은... - A dry soul is wisest and best


취한 사람은 어린아이에게 끌려간다.

그는 어디에 가는지도 모르면서 비틀거리며 따라간다.

그의 영혼은 젖어 있으므로.


영혼은 축축해짐으로서 쾌락을 얻는다.


건조한 영혼이 가장 지혜로우며 최상의 것이다.


의식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생물학적 속임수나 자연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깨어있는 의식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이때 그대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일어난다.

이때에는 사랑자체가 통합적인 힘이 된다.

사랑자체가 깨어있음이 된다.

관계 속에서 그대는 더욱 더 깨어있게 된다.

그대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보살필 뿐, 타인을 이용하지 않는다. 나누어 주기만 할뿐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대는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통해 그대 또한 자유로워진다.

두 사람은 궁극으로 가는 여행길에서 좋은 동반자가 된다.

그들은 서로를 돕는다.

이 길에는 함정이 많다.

길은 멀고 여행은 끝이 없다.

그러므로 고통과 번뇌, 행복, 침묵 등 모든 것을 나누어 가질 동반자가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정신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사람, 그대에게 일어나는 일을  기탄없이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 무슨 일이 닥쳐도 그대를 도와줄 것이라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선할 때나 악할 때나, 화를 낼 때나 행복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그대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변함없이 그대를 사랑해 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 이런 동반자를 갖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감출 필요가 없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을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은 조건을 달지 않는다.

사랑은 무조건이다.

의식적인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과 전혀 다른 현상이다.

의식적인 사랑은 아주 드물긴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상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대의 사랑은 마약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됨 - 지금여기 >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에 대한 단상 - 아인슈타인  (0) 2009.07.07
솔로몬의 비밀  (0) 2009.03.11
거울  (0) 2008.12.11
탄트라 - 1,2권 방편들  (0) 2008.08.27
지금 여기에서~  (0) 2008.08.18

 

 

 

 

거울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상(像)을 찾는다.

처음에는 부모의 시선에서, 그 다음에는 친구들의 시선에서 우리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그러다가 우리는 자신의 참모습을 비춰 줄 하나뿐인 거울을 찾아 나선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알고 보면 <좋은 겨울>의 발견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자신의 만족스러운 상을 비춰 주는 거울을 찾아냈을 때 흔히 첫눈에 반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의 시선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평행한 두 거울이 서로에게 기분 좋은 마법의 시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것은 거울 두 개를 마주보게 놓으면 거울 속에 거울이 비치면서 같은 이미지가 무수히

생겨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렇듯이 <좋은 거울>을 찾아내면 우리는 다수의 존재로

바뀌고 우리에게 무한한 지평이 열린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주 강하고 영원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두 거울은 고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움직이는 존재다.

두 연인은 자라고 성숙하고 진보한다.

그들은 처음에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동안 서로 나란한 길을 따라 나아간다 해도,

두 사람이 반드시 똑같은 속도로 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나아가는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두 사람이 상대의 시선에서 언제나 똑같은 자신의 상을 찾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면 결별이 찾아온다. 나를 비춰 주던 거울이 내 앞에서 사라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건 사랑이야기의 종말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을 잃는 것이기도 하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의 시선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에드몽 웰즈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제5권


“신 - 베르나르 베르베르”에서 옮김


 

'하나됨 - 지금여기 >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솔로몬의 비밀  (0) 2009.03.11
헤라클레이토스 강론 모음  (0) 2009.03.06
탄트라 - 1,2권 방편들  (0) 2008.08.27
지금 여기에서~  (0) 2008.08.18
결론은 역시...... (카발라)  (0) 2008.08.13

TANTRA VISION


탄트라 秘典





마음을 변형시키고 초월시키는 112가지 수행법!


Osho Rajneesh 강의 l 이연화 옮김





5천 년 전 시바는 그의 연인 데비에게

112절로 이루어진 탄트라 방편들을 전수했다.

그것의 이름은 비그야나 바이라바 탄트라(Vigyana Bhairava Tantra)이다.

여기서 비그야나는 의식을 말하고 바이라바는

초월을 의미하며 탄트라는 방편들을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전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의식 초월 방편’이 된다.


목마른 영혼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태어났는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라는 고민도 없이 무지와

무관심, 무감각에 빠져버린 메마른 의식과 안일한 삶의 태도에서

이젠 깨어나십시오.







탄트라의 세계


    탄트라는 지적인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산체험이다.

    그대가 수용적으로 되고, 준비되고,

    느낄 만큼 예민해지지 않는 한

    그것은 그대에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데비가 묻는다.


  오! 시바여, 당신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이토록 경이로 가득 찬 우주는 무엇입니까?

  이 모든 원소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우주의 중심에 앉은 자는 누구입니까?

  형상들로 충만하여 동시에 모든 형상들을 초월한 이 생명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우리는 시간과 공간, 이름과 모양마저도 뛰어넘어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나의 모든 의심을 없애 주소서!



호흡(呼吸), 우주에 이르는 다리


    진리는 언제나 여기에 있다.

    진리는 미래에 성취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는 그대가 바로 진리이다.



1

빛의 샘(光源), 그 황홀한 일별은 들이쉬고 내쉬는

숨 사이에서 찾을 수 있도다.

숨이 들어오고, 들어온 숨이 나가려고 하기직전,

바로 거기에 지복(至福)이 깃들어 있도다.


2

숨을 들이쉴 때 아래(下丹田)에서 위(百會)로 반원을 그리며


회전한다. 그리고 내쉴 때 다시 위에서 아래로 반원을 그린다.

이 두개의 회전점을 통해서 불생불멸의 그 자리를 깨달을 지어다.


3

들이쉬고 내쉬는 그 찰나의 사이에 호흡은 에너지가 없으면서 또한

에너지로 가득 찬 그대의 중심에 닿는 도다.


4

숨을 완전히 내쉰 뒤 호흡이 멎었을 때,

또는 숨을 완전히 들이쉰 뒤 호흡이 멎었을 때,

호흡의 이 우주적인 멈춤 속에서 에고는 사라진다.



다섯 개의 신비


    도약하라!  비상하라!

    그대 자신을 변형시켜라.

    그대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초월시켜라.


5

미간(眉間)에 집중하고 마음을 사념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에 머물게 하라.

정수리까지 호흡의 정수(精髓 : prana)로 가득 차게 하라.

그리고 정수리에서  빛이 쏟아지듯

호흡의 정수가 쏟아지고 있음을 느껴라.


6

일상적인 활동 속에서도 들숨과 날숨사이에 항상 유념하라.

이 수련을 계속하면 머지않아 그대는 다시 태어나리라.


7

만져지지 않는 호흡의 정수는 미간에 있다가

그대가 잠드는 순간 가슴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꿈의 세계를 넘고 죽음의 세계까지 넘어간다.

 

8

지극한 경배와 헌신으로 호흡의 두 교차점에 집중하라.

그리고 ‘아는 자’를 알아라.


9

죽은 듯이 누워 있으라.

화가 날 때 그 분노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

속눈섭 하나 움직이지 말고 응시하라.

빨고 싶으면 빨아라.

그러나 ‘빠는자’로 남지 말고 ‘빠는 그 자체’가 되라.



그대의 마음을 쉬게 하는 방편들



이 방편들은 그대로 하여금 중심을 찾고

거기에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10

사랑의 달콤한 애무를 받을 때 사랑 자체가 되면

어여쁜 공주는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간다.


11

개미가 기어가는 것을 느낄 때 감각의 문을 닫아라.

그때 그것이 일어나리라.


12

침대에 눕든지 자리에 앉든지 그대자신을

무중력 상태에 있게 하라. 그때 마음을 넘어선다.



중심에 이르게 하는 방편들 Ⅰ


    이 방편들은 단전에 뿌리를 박기 위한 것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과학적인 접근 방식이 있다.

    이 방편들을 통해서 그대는 단전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있다.


13

무한한 허공 속에서 오색찬란한 공작의 꼬리 깃털이 그대의

오감(五感)이 되었다고 상상하라. 이제 그 아름다운 색채가 그대의

내면으로 들어오게 하라. 그리고 한 점을 정하여 거기에서 만나게 하고

그 점을 집중하라. 그 점이 허공 속에 있든지 벽 위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다. 그 점이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하라. 그때 또 다른

것을 향한 그대의 바람이 실재가 되어 나타나리라.


14

그대의 신경 전체에 온 주의를 집중시켜라. 연꽃 뿌리 속에 들어 있는

실처럼 섬세한 신경이 척추 속에 있다. 그대의 의식이 척추의 중심에

머무를 때 변형이 일어난다.



중심에 이르게 하는 방편들 Ⅱ


    무심한 마음으로 중도에 머물러라.

    언제까지나.


15

얼굴에 있는 일곱 개의 구멍을 손으로 막아라. 그러면 두 눈 사이의

공간에 모든 것이 담겨지리라.


16

축복받은 자여, 모든 감각이 가슴속으로 녹아들 때 연꽃의 중심에

이르게 되리라.


17

무심한 마음으로 중도에 머물러라. 언제까지나.



중심에 이르게 하는 방편들 Ⅲ


    그대의 전 관심을 방편에다 쏟아라.

    결과는 잊어버려라.

    결과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그것이 방해가 된다.


18

어떤 대상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라.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지 말라. 여기

그 대상의 중심 속에 축복이 있다.


19

손이나 발로 지탱하지 않고 엉덩이로만 앉아 있어 보라. 갑자기 그대는

중심에 이르게 될 것이다.


20

흔들리는 수레 속에서 율동적으로 흔들려라. 수레가 멈추어도 그대는

자신을 보이지 않는 진동 속에 계속 머물게 하라.


21

감로수로 가득 찬 그대  육체의 한 부분을 침으로 천천히 찔러 보라.

그리고 찌르는 행위 속으로 깊이 들어가라. 갑자기 그대는 내면의

순수를 얻게 될 것이다.



중심에 이르게 하는 방편들 Ⅳ


    금세기 가장 위대한 탄트라 행자인

    게오르그 구제프는

    인간의 유일한 죄는 동일시(同一視)이다

    라고 말했다.

    여기의 방편은 동일시에 대한 것이다.


22

과거의 일을 회상하라. 그때 그 상황과 그대의 모습에 집중하고 현재의

모습은 잊어버리면 거기에 초월이 일어나리라.


23

그대 앞에 한 물건이 있다. 그것의 충만한 실재를 느껴라.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다. 오직 그것만이 실재 한다고 느껴라. 그리고 나서 그

두 가지 느낌, 부재감과 실재감 둘 다 떠나라. 그리고 실현시켜라.


24

어떤 사람을 반대 하거나 찬성하고 싶은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기분을

 그에게 투사하지 말고 오직 자신의 중심에 머물게 하라.



정지(靜止)명상법


    “스톱!” 그 상태에서는 숨조차 쉬지 마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느낄 것이다.

    동시에 그대는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25

그대가 어떤 행위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바로 그 순간 정지하라!


26

어떤 욕망이 다가올 때 그 욕망을 주시하라.

그리고 갑자기 그 흐름을 멈추어라.


27

지쳐 나자빠질 때까지 한없이 걸어라.

그러면 결국 쓰러질 것이다.

그 순간 그대는 체가 되리라.



  지성파와 감성파를 위한 각각의 방편


    그대는 마음과 자신을 동일시 하지마라.

    그때 그대는 건강하고 전체적인

    존재의 관점을 갖게 된다.


28


힘과 지식이 점점 그대에게서 빠져 나간다고 상상하라. 완전히 빠져

나가는 순간 거기에 초월이 일어난다.


29

헌신은 자유를 준다.



시각(視覺) 명상법 Ⅰ


    이 세상은 여기에 있다.

    니르바나 역시 여기에 있다.

    이 세상은 가까이 있다.

    마찬가지로 니르바나 역시 가까이 있다.


30

눈을 감아라. 그리고 감은 눈으로 그대 내부의 세밀한 부분들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리하면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알게 되리라.


31

하나의 그릇을 볼 때 그릇 전체를 보라.

그것의 표면이나 재질을 보지 말고 그릇 전체의 형태만을 보라.

머지않아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리라.


32

사람이나 사물을 처음 보는 것처럼 보라.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다.



시각(視覺) 명상법 Ⅱ


    눈은 물질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비물질적인 것이기도 하다.

    눈은 그대와 그대의 육체가 만나는 지점이다.

    육체 속에서 눈만큼 깊이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없다.


33

구름너머 푸른 하늘을 그저 바라보라.

거기에 평정이 있다.


34

궁극적인 신비의 가르침이 전달되는 동안

그대는 눈동자도 깜빡이지 말고 경청하라.

즉시 절대적인 자유를 얻게 되리라.


35

깊은 우물의 가장자리에서 그 깊음을 계속 응시하라.

거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다.


36

어떤 대상을 바라보라.

그리고 나서 천천히 그 대상으로부터 그대의 시력을 지워버려라.

그리고 그대의 사념 또한 지워 버려라. 그러면 ......



소리를 통해 가는 길 Ⅰ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이 쌓인 것이다.

    사람들은 그 마음이란 것에 너무 깊이 사로잡혀 있다.

    그대가 자신을 깨닫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37

데비여,

이 꿀로 가득 찬 각성의 초점 속에서 산스크리트 글자를 상상하라.

먼저 그 글자를 주시하라.

다음에 그 글자의 소리를 명상하라.

그 다음에는 더욱 미묘한 그 소리의 느낌을 명상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느낌마저 넘어가라.

그대는 자유롭게 될 것이다.


38

계속되는 폭포소리에 젖듯이 소리의 중심 속에서 흠뻑 젖어라.

그 다음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고 소리중의 소리를 들어보라.



소리를 통해 가는 길 Ⅱ


    어떤 글자의 소리를 상상하고 소리가 울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세밀하게 지켜보라.

    그때 각성이 일어난다.


39

옴(A-U-M)과 같은 하나의 소리를 영창하라.

그 소리가 소리의 충만 속으로 들어갈 때 그대도 함께 들어가라.


40

어떤 글자의 소리를 상상하고

소리가 울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세밀하게 지켜보라.

그때 깨어 있으라.


41

악기의 현이 울리는 것을 듣는 동안

그것을 이루고 있는 중심 소리를 들어라.

그리하여 편재(偏在) !



소리를 통해 가는 길 Ⅲ


    탄트라는 이 세상을 그대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 운명이 어떠한 것이라도

    그대는 받아들여야 한다. 이 방편들은

    그대가 이런 자세를 취할 때만 도움이 된다.


42

하나의 소리를 영창하고 그 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점점 작아져 가는 소리를 따라 그대의 느낌 역시

침묵의 조화 속으로 깊이 들어가라.


43

입을 가볍게 열고 혀의 중심에 마음을 집중하라.

그리고 호흡이 들어올 때 침묵 속에서 ‘흐(HH)' 소리를 느껴라.


44

어떤 'A' 나 ‘M' 없이 그저 ’옴(AUM)'소리 위에 중심을 잡아라.



소리를 통해 가는 길 Ⅳ


    이름의 소리 속으로 들어가라.

    이 소리를 통해서 모든 소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리라.


45

호흡이 끝날 때 ‘아흐(AH)’로 끝나는 것을 고요히 영창하라.

그러면 저절로 ‘흐(HH)’ 속에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자발성이다.


46

두 귀를 손가락으로 막고 항문을 수축시킴으로써 듣는 것을 멈춰라.

그러면 소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리라.


47

그대 이름의 소리 속으로 들어가라.

이 소리를 통해서 모든 소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리라.



탄트라적 성행위의 영적 의미


    “들어가라. 느낌의 중심 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라.”

    자, 그러면 어떻게 이 느낌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여기 그 방법이 있다.


48

성적인 결합이 시작될 때에 처음의 단계인

‘불의 상태’에 머물러 있으라.

이 불의 상태가 계속되도록 하고

마지막의 ‘타다가 꺼진 불’이 되는 것을 피하라.


49

그토록 깊은 이 포옹 속에서 그대의 감각은 나뭇잎처럼 떨린다.

이 떨림 속으로 들어가라.


50

실제적인 포옹 없이 단지 그 결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변형이 일어난다.


51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친구를 만났을 때 그 기쁨은 말할 수 없다.

이 기쁨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라.


52

먹거나 마실 때 음식의 맛 그 자체가 되라.

그리하여 그 맛으로 그대 자신을 가득 채워라.



환상에서 실재로


    꿈을 꿈이라고 의식할 때 그대의 존재는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때 그대는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53

오, 연꽃의 눈이여, 감촉의 달콤함이여,

노래하고 바라보며 맛볼 때마다 그대가 존재함을 자각하라.

그리고 언제나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라.


54

만족감이 발견되는 곳마다

그 어떤 행위 속에서든지 이것을 실현하라.


55

잠이 들려는 순간, 아직 잠에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외부를 향한 주의력이 사라지는 순간,

바로 거기에서 존재가 드러난다.


56

환영이 그대를 현혹시키고

찬란한 색채들이 그대를 둘러쌀 때,

분별되는 것조차 분별할 수 없게 된다.



삶을 흐르는 물처럼 지켜보는 기법


    오, 사랑스런 그대여,

    쾌락에도 머물지 말고 고통에도 머물지 마라.

    오직 그 가운데 머물라.


57

거대한 욕망의 파도 속에서도,

그대여 흔들리지 마라.


58

이른바 이 우주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요술경처럼 나타나며

갖가지 그림을 보여 준다.

즐거워하라, 그것을 그렇게 보라.


59

오, 사랑스런 그대여,

쾌락에도 머물지 말고 고통에도 머물지 마라.

    오직 그 가운데 머물라.


60

욕망들과 그 대상들은 다른 사람들 속에 존재하듯이

자신 속에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것을 변형시켜라.



파도에서 바다까지


    “눈을 감아라!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이 질문을 던진 자가 누구인지 기억해보라.


61

파도는 바다와 함께 있고 불꽃은 불과 함께 있듯이

우리 역시 우주적 대양의 한 조각 파도다.


62

내면적으로나 외부적으로 그대의 마음이 방황할 때마다,

바로 여기에 이것이다.


63

어떤 특별한 감각을 통해서 명백하게 드러날 때,

그 자각 속에 머물러라.






2004. 1



탄트라 비젼 1,2권(방편들 모음)


사실 이 모든 방편을 요약하면 한단어로 “沒入” 이다.

또한 굳이 사족을 붙이자면 나를 몸과 마음에서 분리시켜 同一視하지 않는 것이다.



기쁨샘(喜源)





 



 

'하나됨 - 지금여기 >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라클레이토스 강론 모음  (0) 2009.03.06
거울  (0) 2008.12.11
지금 여기에서~  (0) 2008.08.18
결론은 역시...... (카발라)  (0) 2008.08.13
사랑의 본질  (0) 2008.07.29

사람들은 왜 그다지도 쉽게 삶에 지치는 것일까?

늘 행복과 기쁨에 겨워 살 수는 없는 걸까?

우리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붓다는 “삶이란 오직 지금 이 순간, 즉 현재라는 찰나의 시간 속에만 존재한다” 고 가르쳤다.

또한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현재다. 당신이 진정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당신이 이 순간을 놓친다면 결국 삶과의 약속을 어기는 셈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인의 마음은 쉽게 현재에 머물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이 늘 현재를 떠나

과거나 미래 어딘가를 방황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삶이 힘겨운 까닭은 이렇듯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4. 8. 26

힘 (틱낫한 지음)에서 발췌

'하나됨 - 지금여기 >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울  (0) 2008.12.11
탄트라 - 1,2권 방편들  (0) 2008.08.27
결론은 역시...... (카발라)  (0) 2008.08.13
사랑의 본질  (0) 2008.07.29
아이들에 대하여 -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  (0) 2008.05.25

 

한 제자가 존경하는 스승이자 달인에게 다가가서

외다리로 균형을 잡고 서는데 걸리는 짧은 시간안에

우주의 모든 비밀과 장엄한 신비를 푸는 답을 가르쳐 달라고 청한다.

그 비범한 달인은 이 지상에 존재했던 가장 위대한 정신적 거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열성적인 제자의 요청을 받고는 그 질문에 대해 아주 신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는 무한의 지혜로 눈빛을 빛내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

.

.

.

.

.

.

.

.

.

.

.

.

.

.

 

 

그대 이웃을 그대 자신처럼 사랑하라.

나머지는 모두 해설에 불과하다.

자, 어서 가서 배우라.

 

2008. 8. 13.

"내영혼의 빛"에서 옮김

'하나됨 - 지금여기 >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탄트라 - 1,2권 방편들  (0) 2008.08.27
지금 여기에서~  (0) 2008.08.18
사랑의 본질  (0) 2008.07.29
아이들에 대하여 -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  (0) 2008.05.25
The Secret - Summary  (0) 2008.03.18

 

 

사랑의 본질

 

사랑은 물질을 창조하고 우주의 일체성과 조화로움을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낮은 차원의 세게에서 사랑은 매혹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일으키고 나무가 탈때 작열하는 불입니다.

그것은 연기를 일으켜 눈물을 흘리게 하는 불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밝은 빛입니다.

온기와 생명력을 주는 태양입니다.

 

사랑은 생명 그자체이다.

 

 

"사랑의 마법사 다스칼로스"에서 옮김

 

 

 

아이들에 대하여

 

 


  그러자 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말했다.

"우리에게 아이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말했다.

너희의 아이는 너희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생명의 아들딸이니.

저들은 너희를 거쳐서 왔을 뿐 너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또 저들이 너희와 함께 있기는 하나 너희의 소유는 아니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저들은 저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너희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줄려고 하지 말라. 저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너희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너희가 아이들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너희같이 만들려 애쓰진 말라.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고,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너희는 활이요, 그 활에서 너희의  아이들은 살아있는 화살처럼 날아간다.

그래서  활쏘는 이가 무한의 길에 놓인 과녁을 겨누고, 그 화살이 빠르고 멀리 나가도록 온 힘을 다하여 너희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너희는 활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듯이 또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기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필적할 만한 작품을 찾기는 어렵다.

이 작품에는 일정한 내적인 흐름이 있다.

처음에 그는 사랑을 이야기했고,

그 다음에는 결혼으로, 결혼에서 아이들로
- 이것이 바로 삶의 강물이 흐르는 방식이다. 


  이 차이를 느낀 적이 있는가?

여자는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며 세속적이다. 여자는 땅에뿌리내리고 있다.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공허한 말장난이나 수수께끼가 아니다.

심지어  수세기 동안 여자들에게는 그러한 것을  질문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이 온통 쓰레기로 가득 차 있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매순간 부딪쳐야만 하는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칼릴 지브란은 추상적인 철학자가 아니다.

추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삶의 진정한 문제들로부터 도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겁쟁이들이지 철학자가 아니다. 그런데 이 겁쟁이들이 세계의 사상을 주름잡고 있으니...

이 질문들 모두가 여자에게서 나왔다. 거기 겁쟁이들도 있었다.

배운 사람들, 성직자들, 철학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물었을 때, 알무스타파는 그들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자가 바보 천치라면 그 어리석은 질문에 일일이 대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너희의 아이는 너희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는 물건이 아니다. 그대는 아이를 소유할 수 없다.

"이 애는 '나의' 아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대의 무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생명은 결코 누구에게 소유 당할 수 없다.

생명을 그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는 있으나, 주먹을  쥐는 순간 생명은 빠져나간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아이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아이들을 파괴해 왔다.

아이를 소유할 수 있는가?  그대는 생명을 창조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가?

생명은 어디까지나 풍요로운  존재의  선물이다. 그대가 그 생명이 탄생하는 도구로 선택된 것에 감사하라.

아이는 그대를 통하여 세상에  나왔지만,  그렇다고 그대에게 소속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대는 단지 통로였을 뿐이다. 만일  부모들이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면 세상은 완전히 다른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아이들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산과 숲과 들판을 통하여 흐르는 영원한 생명이다.

그대를 통하여 세상에 나온 아이는 그대 이전에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통하여 세상에 왔었다.

아이의  과거와 미래에는 영원히 놓여 있다. 아이는 여러 집, 여러 도시, 어려 낯선 장소에서 살았었다.

그 수백만의  통로들 중에서 그대는 하나의 통로일 뿐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아이를 존경하라.

지금까지 세상의  어떤 사회도 아이들을 존경하지 않았다.

나이 먹고, 늙고, 거의 죽은 사람들만을 존경해  왔다.
모두가 무덤에만 존경을 표시하지, 요람에는 존경을 보내지 않는다.

아이는 가장 순수한, 전혀 물들지 않은 생명이다.

알무스타파의 말이 옳다. '아이들은  너희를 거쳐서 왔을 뿐 너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태초로부터 나왔다.


  또 저들이 너희와 함께 있기는 하나 너희의 소유는 아니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세상에선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다.

그대의 부모를   억하는가?

그들은 그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었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사랑을 이용하여 그대에게 자신들의 종교, 자신들의 정치 이념, 자신들의 국적과 사상을  강요하였는가?

그렇지 않으면 인류가  왜 분열되었는가?

누가 죄인인가? 

왜 이토록 많은 국가가 생겨났는가?

왜 이토록 많은 종교가 난립하는가?


  인류는 하나다. 진리도 하나다. 하지만 사람들의 자신의 본래 얼굴을 찾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가면이 씌워지고, 사람들은 이 가면이 자신의 진짜 얼굴인 것으로  착각한 채 평생을 산다.

그대는  자신이 기독교인인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그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던 적이 없다.

그리스도, 고타마 붓다, 마하비라, 노자, 짜라투스타라, 이들 중 누구와 함께 있는 것이 좋은지 선택할 기회도, 선택권도 그대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대의 종교는 그대를 묶는 밧줄이다.

그대의 감옥이다.

그대의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이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사슬이다.

그것들은 육신이 아니라 그대의 영혼을 묶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데올로기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을 팔아 버린 사람이다. 

모든 나라의 모든 성직자들이 이제는 노예제도가 없어졌다고 주장하지만, 그래도 그대는 노예이다.

그 말은 진실이 아니다. 그렇다.

노예제도는  형태를 달리했을 뿐이다. 더 위험해졌다.
그대가 나에게 수갑을 채운다 해도 내 정신은 자유롭다.

내  발에 사슬을 채워도 내 영혼은 자유롭다.

내 몸을 못쓰게 만들어도, 내 영혼은  자유롭다. 

하지만 힌두교와 불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로 그대의 마음을 물들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사슬로 그대의 정신을 묶는 것이다.

이것이 더 큰 죄다. 지금까지의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그 책임이 있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저들은 저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저들의 생각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고, 아직은 씨앗의 형태이다.

저들은 아직 가능성의 상태이다.

하지만 저들에게  자유와 사랑을 주면 저들의 생각은  구체화되고, 실체화된다.

그대 자신의 생각이 실체화되었을 때 그대의 존재는  너무나 큰 기쁨과 충족감 과 축복을 느낀다.

그대는 꿈속에서도 그러한 것을 체험할 수 없으며, 그것에 대한 어떤  관념도 가질 수 없다.

그것은 그대의 사고 능력을 초월해 있다. 그것은 그대의 가슴에서  자라고, 그대의 가슴에서 꽃피어나기 때문이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좋은  의도 아래에서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죽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영혼을 죽여 버렸다.
  저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너희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그대는 과거에 속해 있고, 그대의 시대는 끝났다.

그러니 그대의 죽은 경전들을 아이들에게 짐 지우지 말라.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의 경전을 가질 것이고, 저들 자신의 성자들을 가질 것이다.

저들 자신의 부처, 저들 자신의  그리스도를 가질 것이다.

왜 저들이 과거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가.

그들의 미래는 활짝 열려 있다.


  그대 만일 그대의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그대의 손길을 거두라.

저들이 강해지도록 사상을 주입시키지 말라.

그대의 사상은 저들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대의 사상 때문에  저들은 자신의 길을 잃을 것이다. 그대는 저들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지켜보고, 저들의 뚜렷한 통찰력을 보라.   나이를 먹을수록 그대의 눈에는 먼지가 낀다.

그리고 모두가 그대에게 충고를 한다. 충고란 세상에서 누구나 주면서 아무도 받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대에게 의존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오염시킨다.

알무스타파가 옳다.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저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그대는 어제에  살고 저들은 내일에 산다.

그대가 줄 수 있는 한 많은 사랑을 주어라. 현재는 만남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이별의 장소이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이  현재에서 그대들은 헤어지기 시작한다.

나날이  그대와 그대의 아이들의 간격은 더욱더 커진다.


  그대 만일 과거로부터 자유롭다면, 그대는 더 높은  의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나  붓다보다 더 높은 의식을. 우리는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은 별들을 향해  높이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자명한 진리를 이해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과거는 그대의 인생에 가장 큰 장벽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생각은 이미 시대에 뒤진 것이다.

아이들은 저들 자신의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나무들이 훨씬 잘 안다.

가을이면 낡은 이파리들은 떨어져 흙  속으로 사라져서는, 더 푸르고, 더  젊고, 더 싱싱한 새 이파리가 자라날 자리를 준다.

만일 낡은 이파리들이 계속  나무에 매달려 있기를 고집한다면, 새 이파리들이 자라날 공간이, 가능성이 없게 된다.


  너희가 아이들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너희같이 만들려 애쓰진  말라.
여기서 칼릴 지브란은 대단히 심오한 통찰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이를 그대의 복사본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아이를  죽이는 일이다.

아이들은 자기 본래의 얼굴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본래의 얼굴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본래의 얼굴에는 신성한 어떤 것이 있다.

본래의  얼굴은 위엄을 가지고 있다. 복사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고,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너희는 활이요, 그 활에서 너희의 아이들은 살아있는 화살처럼 날아간다. 

어디를 행해 날아가는가? 미지의  알 수 없는 세계를 행해 날아간다.

저들을 방해하지 말라.  저들에게 힘을 주라. 저들에게 사랑을  주라.
그래서 저들이 가장 먼 별까지 닿을 수 있도록 하라.
  그래서 활쏘는 이가 무한의 길에  놓인 과녁을 겨누고, 그 화살이  빠르고 멀리 나가도록 온 힘을 다하여 너희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존재계는 그대가 그대의 아이들 앞에서 활처럼 구부러지기를 바란다.

저들은 멀리 여행을 떠나야 하고, 그대는 저들에게 힘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활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대의 아이가 그대로부터  떠나갈 때, 그대의 아이가 자신의 권리에 따라 한 개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할 때 그대는 기뻐하라.

그가 순종적인 바보가 되지 않았음을 감사히 여기라.

바보가 아니면 아무도  순종하지 않는다. 지성은 언제나 반역을 꾀한다.

그대가 낳은 아이가 반역의 정신을 가진 것을 기뻐하고, 축복해 주라. 이것이 그대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그것을 불안해한다. 너희는 활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듯이  또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기에. 존재계는 그대들 둘 다 사랑한다.

그대들은 같은  존재계의 아이들이다. 단지 그대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화살들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저들을 축복하라. 알겠는가?

 

아이들에 대하여 -

오쇼 라즈니쉬가 강독한 칼릴지브란의 "예언자" 를

류시화 시인이 옮긴"또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 에서 발췌

2008. 5. 26 - 기쁨샘

 

 

 

 

'하나됨 - 지금여기 >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론은 역시...... (카발라)  (0) 2008.08.13
사랑의 본질  (0) 2008.07.29
The Secret - Summary  (0) 2008.03.18
일곱가지 챠크라 수련법  (0) 2007.12.09
의식적인 사랑  (0) 2007.07.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