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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아가지만 아무런 발자취도 남지 않는다.

누구도 그 길을 따를 수 없다.

그대 자신의 길을 가라.

인류 역사상 누구도 걸어본 적이 없는.

 

 

去樂辭顯(거락사현)

 

넷째날 아침 원숭이 동산에서의 일

 

 

오나라 왕이 강에 배를 띄우고 놀다가

강변의 원숭이 동산에 이르렀다.

원숭이들은 왕의 일행을 보자

모두 겁에 질려 나무 꼭대기로 도망쳤다.

 

그런데 한 마리 원숭이만은 완전히 무관심한 듯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나뭇가지 사이로 이동하며

자기의 재주를 왕에게 자랑했다.

 

왕이 활을 들어 그 원숭이를 향해 화살 하나를 쏘았다.

그러자 원숭이는 날아오는 화살을 능숙하게 손으로 잡는 것이었다.

 

이에 왕은 신하들에게

일제히 원숭이를 향해 활을 쏘라고 명령했다.

한순간에 원숭이는 온몸에 집중적으로 화살을 맞고

그 자리에 떨어져 죽었다.

 

그러자 왕은 친구인 안불의를 돌아보며 말했다.

방금 일어난 일을 보았는가?

이 원숭이는 자기의 영리함을 자랑하고

자기의 재주를 너무 믿었다.

그는 아무도 자기를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기억하라!

사람들과 상대할 때

자신을 돋보이지 말고 재능에 의존하지 말라!“

 

집에 돌아오자 안불의는 그 길로 한 현자의 제자가 되었다.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쾌락을 버렸으며,

어떤 것이든 자신의 뛰어남을 감추는 법을 배웠다.

 

머지않아 나라 안의 누구도 그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모두가 그를 경외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_ <원숭이 재주>

 

 

 

 

<오쇼 강설>

 

예수가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나를 먹고 마시라.

나를 너희의 술과 빵이 되게 하라.

나로 하여금 너희의 핏속을 흐를 수 있게 나를 흡수하라.‘

 

진정한 스승은 눈을 준다.

이것이 길이니 이 길을 따르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대에게 빛을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이 빛을 들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이 빛이 그대의 길을 보여줄 것이다.‘

거짓된 스승은 언제나 그대에게 지도를 준다.

이것이 지도다. 길을 잃고 헤매지 말고 이 지도를 따르라......

거짓된 스승은 그대에게 빛을 주지 않는다.

그대가 빛을 갖고 있다면 지도는 필요 없다.

그대 자신의 길을 발견할 것이다.

 

존재계는 언제나 새로운 독특함 속에서 꽃피어난다.

누구나 특별하다. 그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증명하길 원한다면 그대는 인간이 아니라 한 마리의 원숭이가 될 것이다.

흉내 내는 것을 중단하라.

이것은 가장 위대한 역설 중 하나다. 그대는 독특하다.

하지만 동시에 존재계 전체와 하나가 된다. 이 역설은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직접 체험해야만 한다. 그대는 독특하다.

그러나 동시에 존재계 전체와 하나다.

 

여기 장미가 꽃 피어난다.

장미는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향기를 맡고 그 꽃을 감상할 사람들을 위해서 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 꽃 피어날 뿐이다.

도의 사람은 그 스스로 꽃피어난다.

그는 장미와도 같다.

그는 하나의 용도가 아니다.

자신의 내면 존재를 자각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의 물건과도 같다.

도의 사람은 모든 특기를 떨쳐 버린다.

모든 학위를 불태우고, 모든 다리를 부순다.

그래서 그 자신 속에 머문다.

그는 하나의 꽃이 된다.

이 꽃은 목적 없이 피어난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실현한 것이다.

그때 거기 충만감이 있다.

 

영적인 세계에는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그것은 허공과 같다.

새는 날아가지만 아무 발자취도 남지 않는다.

누구도 그 길을 따를 수 없다.

이 가르침에서 기쁨을 취하라.

행복을 취하라.

그럼 그것이 그대의 내면에서 하나의 빛이 될 것이다.

그것이 그대에게 길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모방하지 말라. 믿음이든 불신이든 갖지 말라. 머리에 의존하지 말라.

한 마리 의 원숭이가 되지 말라.

인간이 되라.

 

Desert Rose - Sands Of Time (2001)

Perception of the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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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없는 사랑보다 훌륭한 사랑이 없고

목적 없는 일보다 만족스런 일이 없다

 

그대 만일 잔꾀와 속임수를 버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슬기로운 계교렷다.

 

_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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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행한 사람들은

내면에 신성의 근원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신성을 찾아다닌다.

 

 

예수는 말한다.

"저 들에 핀 백합꽃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언제나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

솔로몬의 영광도 이 처럼 아름답지는 못하리라."

 

지금 여기에 사는 것이 곧 신성한 영광 속에 사는 길이다.

지금 여기에 사는 것이 존재계의 영광을 얻는 길이다.

지금 여기에 사는 것이 지복과 낙원에 존재하는 길이다.

 

_ 오  쇼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 속에서

죽지 않는 어떤 것을 발견한 사람이다.

내면 깊숙한 곳의 영원한 존재를 안 사람이다.

그때 그곳에 어떤 두려움도 없다.

 

 

 

 

望之木鷄

셋째날 아침 도인이 된 싸움닭

 

기성자는 왕을 위해 싸움닭을 훈련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는 훌륭한 닭 한 마리를 골라 훈련을 시켰다.

열흘이 지나자 왕은

닭이 싸움할 준비가 되었는가를 물었다.

 

조련사는 대답했다.

아직 안 됐습니다.

아직 불같은 기운이 넘치고

어떤 닭과도 싸울 자세입니다.

공연히 뽐내기만 하고

자신의 기운을 너무 믿고 있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다시 묻자, 조련사는 대답했다.

아직 안 됐습니다.

아직도 다른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불끈 성을 냅니다.“

 

또다시 열흘이 지났으나 왕의 물음에 그는 여전히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아직도 상대를 보기만 하면 노려보고

깃털을 곤두세웁니다.“

 

또 열흘이 지나 왕이 묻자, 기성자는 마침내 대답했다.

이제 거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울어도 움직이는 빛이 안 보이고,

먼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조각한 닭과도 같습니다.

이제 성숙한 싸움닭이 되었습니다.

어떤 닭도 감히 덤비지 못할 것이며,

아마 바라보기만 해도 도망칠 것입니다.“

 

_<싸움닭>

 

 

<오쇼강의>

 

기도는 텅 빈 존재의 고요한 갈망이다.

기도의 끝은 침묵이다.

언어마저 사라진 고요한 기도,

사념은 그곳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에고는 녹아서 사라진다.

 

두려움 없는 사람,

이 사람은 자기 자신 속에서 죽지 않는 어떤 것을 발견한 사람이다.

내면의 존재, 불멸의 존재, 내면 깊숙한 곳의 영원한 존재를 안 사람이다.

그때 그곳에 어떤 두려움도 없다.

또한 그때 그곳에 어떤 용감함도 없다.

왜냐하면 용감함은 일종의 위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은 이 앞에서는 모든 언어가 무색해진다.

마음은 침묵하게 된다.

어떤 말을 해도 이치에 맞지 않다.

그에게는 두려움이 없고, 생각이 없다.

그대는 그를 바라보고도 현명한 자라고도 부를 수 없다.

그런 것들은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진정으로 자신이 있을 때, 자신감은 잊혀진다.

사람들은 내게 와서 말한다. 나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고.

이 절대적인 신뢰라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무엇을 위장하기 위한 것인가?

신뢰만으로는 부족한가?

그래서 절대적인 신뢰가 필요한가?

 

에고 없이 싸우는 것,

이것이 궁극의 열쇠다.

만일 에고 없이 싸울 수 있다면 그대는 모든 것을 에고 없이 할 수 있다.

그때 그대는 사랑조차 에고 없이 할 수 있다.

이 싸움닭처럼 에고 없이 싸우는 것, 이제 그는 거의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이 거의 준비가 되었다라는 말을 기억하라.

그 다음 단계는 수행을 모두 버리는 일이다.

그리고 단지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대가 지켜볼 수 있다면 스스로 사라질 것이다.

어떤 행위도 필요 없다.

그대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때 어떤 수행도 필요치 않다.

그때 그곳에는 순간에서 순간으로의 삶, 축제만이 있을 뿐이다.

순간에서 순간으로의 감사가 있다.

순간에서 순간으로의 기쁨과 환희가 있다.

 

 

 

With or without You

 

See the stone set in your eyes

See the thorn twist in your side

I wait for you

Sleight of hand and twist of fate

On a bed of nails she makes me wait

And I wait without you

With or without you

With or without you

Through the storm we reach the shore

You give it all but I want more

And I'm waiting for you

With or without you

With or without you

I can't live

With or without you

And you give yourself away

And you give yourself away

And you give

And you give

And you give yourself away

My hands are tied

My body bruised, she's got me with

Nothing to win and

Nothing left to lose

And you give yourself away

And you give yourself away

And you give

And you give

And you give yourself away

With or without you

With or without you

I can't live

With or with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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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으로

 

누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가?

생각들이 엉클어진 곳에서

그 많은 신비를 발견하는 자 누군가?

 

그가 보는 것을 그의 눈으로 보라

과연 누가

그의 눈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인가?

 

루 미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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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annes Linstead & Nicholas Gunn

 Encanto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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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 City

 

 

 

 

서로 녹아서 흘러가며 밤을 향해 노래 부르는

시냇물처럼 되기를.

너무나 깊은 애정의 고통을 알게 되기를.

스스로 사랑을 알게 됨으로써 상처받게 되기를.

그리하여 기꺼이, 즐겁게 피 흘리게 되기를.

낮에는 쉬며 사랑의 황홀한 기쁨을 명상할 수 있기를.

저물 무렵엔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기를.

그리고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입술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며 잠들게 되기를.

 

-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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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은데

 

 

나는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작은데

이 큰 사랑이 어떻게 내 몸 안에 있을까?

 

네 눈을 보아라, 얼마나 작으냐?

그래도 저 큰 하늘을 본다

 

- 루  미 -

 

 

 

 

 

 

 

 

 

 

 

 

 

 

 

 

 

 

 

 

 

 

 

 

 

 

 

 

 

 

 

 

 

 

 

 

 

 

 

 

 

 

 

 

 

 

 

 

 

 

 

 

 

 

 

 

 

 

 

 

 

 

 

 

 

 

 

 

 

 

 

 

 

 

 

 

 

 

 

 

 

 

삼악산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니.....

 

 

2010.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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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에 나비가 스쳐 지나갈 때,

구름이 세찬 바람에 흩어지고 모여들 때,

당신은 그 입자와 파동들을 사랑한다.

당신은 그것들을 부리고 축복한다.

당신은 모든 곳에, 모든 곳에 있다.

이처럼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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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싸우지 말라.

다만 마음을 옆으로 내려놓으라.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다.

싸울 필요가 없다.

달아날 필요도 없다.

 

 

 

不休而死

둘째 날 아침 그림자 도망치기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싫어한 나머지

그것을 떨쳐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방법은

그것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발을 내디뎌 달리면 달릴수록

새로운 발자국 소리가 늘어만 가고

그의 그림자는 조금도 어려움 없이

그를 따라왔다.

 

그는 이 모든 재난이

아직 자신의 달리는 속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더욱 빠르게 달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힘이 다해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만일 그가 단순히 그늘 속으로만 걸어 들어갔어도

그의 그림자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가 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어도

그의 발자국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자와 발자국 소리>

 

 

Tunn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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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도를 말하다

 

 

오쇼

류시화 옮김

 

 

 

 

 

마음이 옳으면 모든 옳고 그름의 판단을 잊는다.

그때 그대는 자유인이다.

삶이 그 자체로 흘러가게 하라.

흐름에 존재를 맡긴 채 흘러가라.

그 흘러감 자체가 궁극의 깨달음이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다.

 

순수한 침묵이 내안에 있음을 안다면 나는

언제 어디서나 평화로울 수 있다.

어떤 감정이 나를 방문하더라도

나는 곧 순수한 침묵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

그것은 늘 내 안에 있다.

_ 류시화

 

 

亡是非

첫째 날 아침 신발이 발에 맞으면

 

 

목수로 유명한 공수는

아무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도구를 사용한 것보다 더 완벽한 원을 그릴 수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무에서 형태를 낳고

그의 마음은 자유로워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무심의 경지에 있었다.

 

무엇에도 자신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마음은 더 없이 단순한 상태가 되어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았다.

 

신발이 발에 맞으면

발의 존재를 잊는다.

허리띠가 허리에 꼭 맞으면

허리의 존재를 잊는다.

마음이 옳으면

모든 옳고 그름의 판단을 잊는다.

무리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으며,

필요를 느끼지도 않고 유혹 되지도 않는다.

그때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때 그대는 자유인이다.

 

쉬운 것이 옳은 것이다.

옳게 시작하라, 그러면 쉬어진다.

쉽게 나아가라, 그러면 그대는 옳다.

쉽게 나아가는 옳은 길은

그 옳은 길을 잊는 일이며

또 쉽게 나아간다는 것조차 잊는 일이다.

 

 

<오쇼강의>

 

의지를 통해 이룬 것은 무엇이든 늘 짐으로 남을 것이다.

늘 하나의 갈등, 내면의 긴장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엔가 이룬 그것들을 다시 잃고 만다.

 

오직 노력 없음을 통해 이룬 것만이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짐이 아닌 것만이 영원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부자연스럽지 않은 것,

오직 그것만이 영원히 그대와 함께 남아 있을 수 있다.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잊어야 한다.

이제 갓 태어난 어린아이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모르는, 어떤 구분도 없는...... .

일단 마음속에 구분이 일어나면,

일단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는 것을 분별하면,

이미 병든 것이다.

그때는 진리에서 한없이 멀어진다.

 

노력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노력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이고 경쟁적이다.

그러나 진리의 세계에서는 노력을 통해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고타마 붓다는 6년 동안 고행을 했다.

끊임없이 명상하고 노력했다.

고행자가 되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는 자신의 전 존재를 걸었다.

붓다는 철저히 실패했다. 6년의 노력 후 그는 완전히 좌절했다.

그 완전한 절망 속에서 그는 모든 노력을 포기했다.

그는 진리의 세계에 속한 것들까지 모두 포기했다.

그리고 그날 밤,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편안한 잠을 잤다.

질적으로 다른 침묵이 그의 내면에 찾아 왔다.

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 상태가 그날 밤 그에게 일어났다.

아무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 꿈은 욕망의 그림자다.

더 이상 나아갈 곳도, 어디론가 나아갈 자도 그곳에 없었다.

그 자체가 깨달음 이었다.

인간에게 가능한 궁극적 현상이 그에게 일어났다.

그날 밤, 부처는 꽃피어났다.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의 욕망이 너무나 미래로 달려갔기 때문에

그는 지금 여기를 볼 수 없었다.

 

도의 사람은 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물건임을 이해한다.

그래서 도의 사람은 그것을 버린다. 사실 그것을 버릴 필요가 없다.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는 순간 그것은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

그곳에 더 이상 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어린아이가 된다.

그의 마음은 자유롭고 무심의 경지에 있다.

 

건강한 것은 잊혀 진다.

그러나 병든 것은 늘 기억에 남아 있다.

그것은 늘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그래서 언제나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완벽하게 건강한 자연인은 완벽하게 자신을 잊는다.

그는 흰 구름과 같다. 바람과 같다. 바위와 같다.

나무와 같고, 새와 같다.

그러나 인간과는 다르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처처럼 오직 병든 것만이 기억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움은 내적인 합일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깊은 조화다.

그곳에 아무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곳에는 선택이 없다. 그것은 선택이 사라진 받아들임이다.

선택하지 말라. 그리고 이것이 기적이다.

 

쉬운 것이란 그런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듯이 존재하는 것.

자신이 그곳에 없는 듯 있는 것.

누구의 길도 가로막지 않는 것.

그대는 존재의 환희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자연스러움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

그대는 자연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는 그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받아들임 자체가 된다.

그의 받아들임을 통해 그대는 삶의 받아들임을 배운다.

그리고 만일 그대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자연스러움이 일어날 것이다.

일단 자연스러움이 일어나면

저 큰 바다가, 깨달음의 대양이 멀지 않다.

강물이 그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갈 것이다.

 

 

Saint Of Sin - Moments in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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