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명
03. 호리유차(毫釐有差) 천지현격(天地懸隔)
(간택을 싫어하고 증애가 없는 마음에서)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의 간격으로 벌어진다.
간택(揀擇)함이 없는 마음이나 증애(憎愛)함이 없는 마음바탕에
털끝만큼이라도 가리고 택하는 차별심이나 미워하고 좋아하는 차별심이 남아 있으면
이 차별이 하늘과 땅의 간격으로 벌어진다고 했다.
택하고 버리는 마음이나,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은 모두 자기 욕심에서 일어나는 마음이며,
욕심은 구하는 마음이 심해지면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만스러운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구하는 것이 있으면 반대로 구하지 않는 것도 있게 되니
자연히 좋고 나쁜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구하던 것이 구해지면, 더 좋은 것을 구하려 하게 되고,
또 점점 더 좋은 것을 구하려는 것이 우리의 욕심이니 언젠가는 불만이 생기게 된다.
또 이렇게 구하고 모아서 쌓아놓은 자기 것을 잃게 되었을 때도
역시 불만스럽게 되고, 그 불만이 커지면 원한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원한(怨恨)은 복수(復讐)로 이어질 수 있으니,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가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호리유차(毫釐有差) 천지현격(天地懸隔)
(간택을 싫어하고 증애가 없는 마음에서)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의 간격으로 벌어진다.’고 했다.
이러한 악순환의 발단은
간택하는 분별심과 증애(憎愛)의 분별심에서 일어나는 법이니
오직 간택(揀擇)하는 마음을 싫어하면 지도(至道)에 무난히 이를 수 있고,
증애(憎愛) 하는 마음이 없으면 지도하는 길이 통연(洞然)하고 명백(明白)해진다고 한 것이다.
간택하는 마음과 증애하는 마음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간택하는 마음이나 증애하는 마음은
이기심(利己心)의 근본인 오온심(五蘊心)에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오온심이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물질, 느낌, 생각, 행동, 의식인데,
물질은 몸이고 느낌, 생각, 행동, 의식은 통틀어서 마음이라고 하는데
우리들의 감각작용은 몸을 통해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 말이나 행동,
즉 간택 및 증애하는 느낌, 생각, 언행의 근본이 되는데 식(識)에서 일어난다.
이 의식은 전생에 있었던 나의 경험이나 금생에 있었던 나의 경험이 지배하는 나의 생각이다.
미워하거나 좋아하거나, 택하거나 버리는 생각의 요인은
나의 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그렇게 판단되고 행하는 것이지
그 사물이나 사람 자체에 미운 털이 박혀있어서 미운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미운 털이 박혀있는 사람이나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나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그 물건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 된다.
절에 오면 사람들이 많다보니 그 중에는 자기 비위에 맞는 사람도 있지만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 자체가 좋아서 내 비위에 맞고,
그 사람 자체의 성격이 나빠서 내 비위에 거슬린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자신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자신의 오온심에서 비롯된 자신의 사고방식에서 온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런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자기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지
상대방에게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깨달음으로 자기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만 있으면
그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나에게 접근해 온다 하더라도
그를 간택하거나 증애하는 마음 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형형색색의 사람과 물건이 서로 어우러질 때
생(生)함이나 성장함이 일어나는 법이고 창조가 가능해 질 수 있지만,
서로 대립하거나 배척할 때는 서로 쇠퇴해지고 멸하게 되는 법이다.
그렇다고 남을 상대하지 않으면 연기하는 대열에서 소외되고
자기 성격의 개선(改善)이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되어 더욱 외골수로 빠지게 된다.
이것도 역시 자기가 간택하고 증애하는 결과로 일어나는 현상이지
남에게 허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말씀한
‘상대방에게 허물이 있기도 하겠지만 많은 경우 상대방에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고(思考)의 허물에 의해 상대방에 허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은
불교의 인과응보설을 바르게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관점(觀點)이다.
이러하기 때문에 간택하는 마음을 싫어하고 증애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오온심에 기록되어 있는
과거의 경험을 소멸하기 위해 참회하고, 복을 짓고, 도를 닦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참회는 복(福)을 짓는 뿌리이고,
복을 짓는 행위는 수행을 위한 뿌리이다.
즉 수행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복 짓는 일부터 해야 하고,
복 짓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남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였거나 해(害)가 되는 일을 한
성품, 말, 행동 등에 대한 참회가 있어야 한다.
참회를 통해서 복(福) 짓는 일에 역행하였던 일을
다시는 하지 않음으로서 복 짓는 일에 가속이 붙게 된다.
복을 짓고 수행하는 일에 근본이 되는 것이 내 마음을 믿는 신심(信心)이다.
인과응보를 믿고 제행이 무상함을 믿으며,
제법이 무아하다는 가르침을 내려주신 불법승 삼보를 믿는 마음이다.
복 짓는 마음이란 나를 위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다.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그 과보로 금생에 복된 일이 많이 일어나게 된다.
건강 복, 부모 복, 형제 복, 친구 복, 스승 복, 관록 복, 명예 복, 재복, 사업 복, 부인 복, 남편 복, 자식 복,
불교를 만나는 복, 노래를 잘 부르는 복, 그림을 잘 그리는 복, 총명한 복 등등 수 없이 많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의 일상생활 자체가 복을 짓는 업이 되기도 하고,
무기(無記)이기도 하고, 또 악업을 짓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소에 어느 쪽으로 복 짓는 일을 많이 하느냐에 따라
금생이나 내생에 그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항상 남과 잘 사귀고 남에게 필요한 일, 좋은 일을 해 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좋은 연을 많이 짓다보면
선한 도반을 많이 만나고 훌륭한 스승이나 선배 또는 귀인을 만나 하는 일마다
잘 풀려가 더욱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다.
남이 하는 언행이 나의 비위를 상하게 했을 때,
저 사람의 언행이 기분 나쁘다고 생각되는
즉시,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저 사람이 저런 언행을 하지 않았을까? 고 생각하는 마음이
간택(揀擇)이 없고 증애(憎愛)가 없는 마음이다.
상대방의 언행으로 말미암아 화가 났을 때,
자기가 낸 화를 정당화하려 하거나 변명하려하는 것은
간택심과 증애심을 오히려 깊게 하는 결과를 낳게 한다.
그러므로 화가 난 것을 인지하는 즉시
마음 속 깊이 참회하고 복 짓는 일을 찾아 하면
화도 다스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간택심과 증애심도 점차 해소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복을 잘 지어 부처님 법에 수순할 수 있을 때
정(定)과 혜(慧)를 함께 닦아 탐욕심을 비워
선정(禪定)을 이루고 무명을 밝히는 도를 닦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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